I. 교환 파견 동기
사실 저는 외국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교환학생을 가지 않기로 마음먹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교환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은 끝없는 과제와 시험으로 가득한 학기생활에 대한 두려움으로 어디론가 도망가고자 하는 막연한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런 치기 어린 감정에서 시작된 결심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도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외국에 대한 공포를 망각하게 하였고, 새로운 경험에 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등을 밀어주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롯이 자유만을 누리며, 머나먼 타지에서 몇 개월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는 이때가 아니면 얻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교환을 떠나기 전에 저는 완전한 미지의 세계에서 살아갈 제 모습이 궁금했고 동시에 기대되었습니다. 반복적이고 따분한 학교생활에서 벗어나면 스스로가 어떠한 변화를 겪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그러한 변화가 제 삶에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하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II. 파견대학 및 지역 소개
1. 파견대학/지역 선정 이유
가장 큰 이유는 언어였습니다. 가능한 한 영어로 생활이 가능한 국가를 찾고자 했고, 네덜란드에서는 영어로 생활하기에 무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끄럽지만 국가와 대학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는 구체적인 이유보다는 제 느낌을 앞세웠고, 당시 바쁜 학기를 핑계 삼아 자세히 찾아보지 않았기에 제 예상에서 벗어난 일이 많았습니다. 영국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단순히 날씨가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였으나 네덜란드의 기후도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대학교 역시 자세히 정보를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선정된 대학교가 소도시에 있다는 사실조차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무지와 나태가 저를 라이덴이라는 아름다운 도시로 이끌어주었기에 어찌 보면 운명적이고, 동시에 천운인 것 같습니다.
2. 파견대학/지역 특징
라이덴은 네덜란드에서 인구 6위의 소도시입니다. 암스테르담까지는 라이덴 센트랄 역 기준 기차로 20-30분 정도면 이동할 수 있고, 스키폴 공항까지는 15분밖에 걸리지 않아서 여행하기에 좋은 위치에 있습니다. 행정상의 수도인 헤이그도 기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어 큰 아시안 마트에 방문하기 위해서 등의 이유로 종종 방문했습니다. 생활적인 면에서는 공교육 덕에 네덜란드 사람들은 나이에 관계없이 영어를 능통하게 구사할 수 있었고, 따라서 의사소통에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식료품점이나 잡화점도 여러 브랜드가 곳곳에 있었기 때문에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다만 도시가 작다 보니 시내가 넓지 않아서 교환생활 후반부에는 살짝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생활에 필수적인 것은 자전거인데, 라이덴에는 트램이 없고 대중교통은 버스와 기차밖에 없어서 자전거가 없으면 생활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시내에 살면 걸어서 다닐 수 있겠지만, 저는 도시의 외곽에 살았기 때문에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자전거를 이용했습니다. 대다수의 네덜란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는 만큼 어찌 보면 인도보다도 자전거 도로가 굉장히 잘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네덜란드에 교환을 온다면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을 가급적 추천 드립니다.
하지만 이런 구체적인 정보로는 제가 6개월간 생활하며 느낀 라이덴이 다 표현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도시 곳곳에 퍼져 있는 작은 운하, 빨간 지붕을 얹은 벽돌집, 넓은 초록빛 초원과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동물들이 라이덴을 이루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동화에 나오는 마을 같았고, 파란 하늘 아래에 수놓아진 풍경을 보다 보면 저도 모르게 자전거를 멈추고 눈 앞의 풍경을 응시하게 되었습니다. 운하는 마치 사람들의 삶의 터전과 같아서 주민들이 수영을 하거나 작은 보트, 혹은 큰 요트를 타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각자의 여유를 즐기며 배에서 가족들이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집 앞에 있는 공원은 자전거를 타지 않으면 돌아다니기 힘들 정도로 넓었고,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고 있었습니다. 그 풍경이 너무 평화롭고 자연친화적으로 느껴져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사람들도 무척 친절했고, 행인이 먼저 제게 네덜란드어로 말을 거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보통은 ‘오늘은 도서관이 열지 않는다’거나 ‘이쪽에는 더 이상 자전거를 주차할 공간이 없다’는 등의 말이었으나, 제가 네덜란드어를 알지 못해서 다시 한번 물어봐야 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습니다.
III. 출국 전 준비 사항
1. 비자 신청 절차
네덜란드에 거주하기 위해서 별도의 비자는 필요하지 않으며, 대신 거주 허가증을 발급받아야 합니다. 학교에서 관련 설명 메일이 올 텐데, 그 설명에 따라 이민청에 생체 등록을 신청하고 사진 촬영 및 지문 스캔을 진행하면 한두 달쯤 후에 거주 허가증을 수령할 수 있습니다. 이때 수령 날짜가 미리 정해져 있는데다 기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위트레흐트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메일이 왔을 때 날짜를 확인해서 일정을 비워두는 것이 좋습니다. 별개로 시청 면담 절차도 있는데, 이를 통해서는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와 비슷한 BSN 번호를 받게 됩니다. BSN 번호는 면담을 끝내고 받는 종이 말고는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무조건 종이를 사진 찍어두는 것이 좋습니다.
주의할 점은 모든 면담을 신속하게 신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민청 생체 등록도, 거주 허가증 수령도, 시청 면담도 순식간에 예약 가능 시간대가 마감되기 때문에 메일이 오자마자 예약하는 것이 좋습니다. BSN 번호가 있어야 네덜란드 계좌를 만들 수 있고, 네덜란드 계좌가 있어야 교통카드를 만들 수 있으므로 빨리 진행되지 않으면 앞으로의 생활에 불편함을 겪을 수 있습니다.
또 주의할 점은 생체 등록과 시청 면담을 헷갈리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자세히 메일을 읽지 않고 둘을 혼동해서 생체 등록만 신청하고 시청 면담은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네덜란드에 도착한 후에야 착각한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시청 면담 일정이 모조리 차 있어서 신청이 불가능했습니다. 혹시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실 분들을 위해 말씀 드리자면, 생각만큼 시스템이 빡빡하지 않아서 우선 시청에 전화를 해보시길 바랍니다. 저 역시 두려움에 떨면서 전화를 했지만 다행히 직원 분께서 아무렇지도 않게 내일 오라며 예약을 잡아주셨습니다.
2. 숙소 지원 방법
네덜란드에서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집입니다. 주택난이 심각한 네덜란드에서 집을 개인적으로 구하기는 매우 어려우며, 학교에서도 만약 집을 구하지 못했다면 교환을 오지 않을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네덜란드에서 집이 없어서 친구 집에서 지내고 있는 교환학생 분들을 종종 봤습니다. 따라서 학교에서 기숙사 관련 메일이 오자마자 기숙사를 신청하고 중개비까지 송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등록 사이트에서 꼭 메뉴 순서대로 완료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housing 부분을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좋습니다. 선착순 안에 들었는지 여부를 거의 종강할 무렵에 알게 되기 때문에 만약 늦게 신청했다면 학기 내내 마음고생을 하게 됩니다. 저는 application이 열리고 3-4일 정도 후에 송금을 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다행히 선착순 안에 들었습니다.
선착순 안에 들었다면 또 다른 선착순 경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방 선택은 수강신청처럼 정해진 시간에 모두가 함께 진행하게 됩니다. 이때 방이 정말 빠르게 빠져나가기 때문에 미리 기숙사 종류를 보고 우선순위를 세워두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방 선택이 기말고사 시간대와 겹쳐서 동생에게 부탁했는데 동생은 일부러 낮은 층인 2층을 노려서 한번에 성공했다고 하니 비슷한 방법을 사용해 보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같은 건물이라 하더라도 1인실/2인실 여부나 넓이가 다르며, 헤이그에도 기숙사가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헤이그에 거주하면서 라이덴으로 등하교하려면 기차를 이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도시에 거주할 수 있는 장점도 있고, 실제로 그런 상황의 교환학생들도 흔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방을 고를 때 고려해야 할 것은 1인실/2인실 여부, 위치, 시설, 거주 보조금 신청 가능 여부 등이 있습니다. 가격은 2인실이 더 저렴하지만 부엌과 화장실을 혼자 사용하는 1인실은 정부에서 거주 보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한 달에 690유로의 월세를 지불하였지만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아 한 달에 70만원 정도로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라이덴에 있는 기숙사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 봤는데 참고 정도만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HKM: 약 700유로 / 학교, 시내와 가까움 / Leiden Centraal 역 걸어서 20분 / 1909년의 건물 리모델링
- Hugo De Grootstraat: 화장실, 주방 공유하는 1인실 / 학교, 시내와 가까움 / Leiden Centraal 역 걸어서 20분 / 1912년 건물
- De Zeven Provincien: 학교, 시내와 멂 / De Vink 역과 가까움 / 근처에 공원 존재
- Sigmaplatnsoen: 약 700유로 / 학교 걸어서 20분, 시내와 멂 / Leiden Lammenschans 역과 가까움 / 2019년에 지어진 주거 단지 / 옆에 큰 공원 존재
- Oranjelaan: 학교, 시내와 멂 / Leiden Centraal 역 걸어서 30분
- Smaragdlaan: 방세 가장 저렴(2022년 기준 62만원) / 2인실 / 학교, 시내와 멂 / De Vink 역과 가까움 / 학교 스포츠 센터와 가까움
시내에서 살고 싶다면 HKM이 대중적인 선택지이며, 2인실이어도 비용이 중요하면 Smaragdlaan도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시내와 멀어도 새 건물에서 살고 싶다면 Sigmaplantsoen을 추천 드립니다. 2024-2학기 기준 한국 학생들 중에서는 HKM 거주자가 가장 많았습니다. Hugo De Grootstraat에 거주한 친구의 말에 따르면 공용주방을 사용해야 했고 매일 밤 파티로 시끄럽다고 했으므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오래되어서 방 안이 추운 편이니 이 점도 고려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거주했던 Sigmaplantsoen를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Sigmaplantsoen에서 한국인은 저밖에 보지 못했는데, 저는 정말 괜찮은 기숙사라고 생각합니다. 2019년에 지어진 새 건물이라서 쾌적한 것이 큰 장점이고 아파트처럼 단지 안에 마트, 카페, 식당, 헬스장 등이 있습니다. Lammenschans 역(Centraal과 한 정거장 차이)이 단지 입구에 있기 때문에 기차를 타기 편리하고, 근처에 넓은 공원이 있어서 힐링하기에도 좋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시내에 가는 데 자전거로 10분, 학교도 비슷하게 걸립니다. 특히 스포츠 센터가 자전거로 20분 정도로 꽤 멀어서 운동하러 가는 길이 조금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여행할 때는 보통 Leiden Centraal을 이용하기 때문에 환승하는 시간이 추가적으로 더 소요됩니다. 이런 지리적 단점 때문에 만약 자전거를 빌리지 않을 계획이라면 시내에 가까이 거주하는 것이 좋으며, 자전거를 빌릴 생각이라면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3. 파견 대학 지불 비용(student fee, tuition fee, 기숙사 비용 등)
상술했듯 기숙사 비용은 보통 한 달에 100만원 정도이며, 거주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면 한 달에 30-40만원 정도 받는 듯합니다. 보험은 학교에서 추천하는 AON을 가입했는데 한 달에 56.7유로였습니다. 라이덴 대학교는 공식 기숙사가 없고 DUWO라는 업체에 위탁하여 운영하고 있기에 기숙사 중개료를 약 42만원 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거주 허가서 발급 비용은 약 34만원이었습니다. 그밖에 OWL이라고 하는 오리엔테이션 신청비가 약 16만원이었는데, 교환학생 친구를 만나기 좋은 자리이기 때문에 신청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룹마다 분위기는 다르지만 저희 그룹은 사이가 좋아서 크리스마스 파티도 하는 등 종종 어울려 놀았습니다. 또 스포츠센터 6개월 이용권이 20만원 정도였는데, 별도로 예약할 필요 없이 센터에서 열리는 수업을 모두 들을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서울대에 비하면 운동의 종류도 다양했고 수업도 영어로 진행되었습니다.
4. 기타 유용한 정보
혹시 한국에서 짐을 부칠 일이 있다면 관세를 유의해야 합니다. 중고 물품이기에 물품 내역을 쓸 때 ‘Used’을 붙여야 하며, 특정 금액을 넘으면 매우 많은 관세를 지불하게 됩니다. 저는 금액을 높게 작성하고 ‘Used’를 붙이지 않았더니 두 박스에 40만원 가량의 관세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PostNL에서 메일로 관세 지불 요청이 오는데, 혹시 택배가 오지 않는다면 놓친 메일이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네덜란드 거주 한인들의 커뮤니티인 페이스북 그룹 ‘낮은 땅 높은 꿈’에 유용한 정보가 많으니 가입하는 것이 좋습니다. 라이덴 대학교 한국학과 학생들과의 교류 신청 공지도 이곳에 올라오는데, 저는 뒤늦게 정보를 접해서 신청하지 못했습니다. 그밖에도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찾기 좋아서 자주 이용했습니다.
IV. 학업
1. 수강신청 방법
수강신청 방법은 한국과 상이했습니다. 신청 사이트에서 원하는 과목을 담아서 기다리면 며칠 후 결과를 확인하라는 메일이 오고, accepted 여부를 확인한 후 또 원하는 과목을 담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런데 인원이 찼다는 이유로 deny되는 경우가 많아서 시간표를 확정 짓는 데 몇 주가 걸렸습니다. 학기 중에 수업을 드랍하는 것은 쉽기 때문에 여유롭게 수업을 신청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2. 수강과목 설명 및 추천 강의
저는 세 강의를 수강했습니다. 두 과목은 5ECT, 한 과목은 10ECT였는데 5ECT 당 일주일에 2시간씩 수업했습니다.
- Introduction to the Georgian Language(10ECT)
가장 만족도가 높은 수업이었습니다. 언어학 관련 수업을 듣고 싶었지만 들을 만한 수업이 없어서 외국어 수업을 선택하였습니다. 조지아어는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전세계적으로 학습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의미 있는 경험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0명 남짓의 소규모 수업이어서 수업 분위기가 무척 좋았고, 돌아가면서 본문을 읽거나 말하게 해서 언어를 연습하기 좋았습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생소한 음소를 조음하고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문법 체계도 낯설어서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조지아어가 가장 어려운 언어 중 하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글도, 말도, 문법도 매우 어려웠지만, 학생들이 다들 언어에 관심이 많아서 함께 열의에 차서 재미있게 수업을 들었습니다. Block 1에서는 네덜란드인 교수님께서 수업을 진행하셨지만 Block 2에서는 실제 조지아인 교수님께서 수업을 진행하였고, 조지아 대사관에서 수업을 참관하러 방문하신 적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할 수 없는 의미 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해서 언어에 관심이 있다면 조지아어를 배우는 것도 좋은 선택지가 될 것 같습니다.
- Memory and Decolonization(5ECT)
두 번째로 만족했던 수업입니다. Memory라는 학문을 서울대에서는 본 적이 없어서 흥미를 느끼고 신청했습니다. 한국에서 식민지라고 한다면 단순히 일제 강점기와 관련한 역사 수업만 생각나는데, ‘기억’에 초점을 맞추어 다양한 사례를 접하고 여러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는 무척 좋은 기회였습니다. 식민지를 세웠던 국가에서 진행되는 수업이니만큼 한국에서 듣는 수업과 확연히 다른 내용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를테면 식민지 시대 영웅을 숭배하는 동상을 오늘날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식민 지배의 대상이었던 인도네시아와 어떻게 화해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강대국의 입장이 알게 모르게 섞여 있어서인지 수업을 듣다가 저도 모르게 반박하고 싶어지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단순히 ‘식민지는 나쁘다’는 일차원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서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수업은 교수님께서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다양한 국적과 배경의 학생들이 있어서 여러 시각의 의견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 Statistics for the Humanities(5ECT)
앞의 수업들에 비하면 무난했던 수업이었습니다. JASP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실습을 진행하고 통계에 관련한 여러 개념을 배운 것은 유용했으나, 한국의 수업에 비해 난이도가 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고등학생 때 이미 배웠던 표준편차나 진리구간의 개념을 배우고 이를 계산하는 과정을 연습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과제가 2개로 적고 기말고사만 있었기에 로드가 적어서 부담 없는 수업이었습니다.
3. 학습 방법
ETL과 유사한 Brightspace에서 모든 공지와 수업 자료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웹으로도, 앱으로도 접근 가능합니다. 서울대에 비해서는 전체적으로 수업과 시험의 난이도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느껴졌으며, 도서관도 상대적으로 자리가 널널했습니다. 그러나 시험기간에는 도서관 자리를 예약해야만 사용할 수 있고 시간 연장이 되지 않아서 불편했습니다. 도서관은 Lipsius 옆에 있는 대학교 도서관보다는 법대 도서관이 훨씬 예뻐서 자주 이용했으며, Arsenaal과 Herta Mohr도 건물이 예뻐서 종종 방문했습니다. 스포츠 센터 근처 자연대에 있는 도서관도 괜찮았고, 그밖에도 도시 여기저기에 도서관이 있으니 다양한 곳에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4. 외국어 습득 요령
생활하면서는 거의 네덜란드어를 쓸 일이 없습니다. 때문에 네덜란드어를 배우고 싶다면 학교에서 진행되는 교환학생용 네덜란드어 수업을 듣거나, 한국학과 학생들과의 언어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방법 정도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어느 쪽도 신청하지 않았고 듀오링고로 간단한 인사말과 단어 정도만 익히고 귀국하였습니다.
5. 기타 유용한 정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방법이 생소해서 헷갈릴 수 있습니다. 책꽂이에 모든 책이 있지 않고 대부분의 책은 지하 서고에 있기 때문에 Catalogue 사이트에 검색해서 확인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사이트에서 대출 신청을 하면 1-2시간 후 수령하라는 메일이 오고, 무인 보관함에 학생증을 인식시켜서 수령할 수 있습니다. 주의할 점은 수령 장소를 Leiden University Library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법대 도서관으로 신청하면 수령하는 데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저는 신청한지 약 3일 정도 후에 책을 수령했습니다.
인쇄는 학교 곳곳에 있는 프린터를 통해 할 수 있습니다. mobility print 앱을 설치하고 휴대폰에서 인쇄를 한 후, 프린터 화면에서 로그인하면 문서를 출력할 수 있습니다. 미리 LU card에 돈을 충전해야 하며 충전은 Lipsius나 도서관에 있는 기계에서 할 수 있습니다. 학교 사이트에서 자세한 설명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V. 생활
1. 가져가면 좋은 물품
대부분 직접 요리해서 식사를 해결하기 때문에 즉석밥, 코인육수, 블록국 등을 가져오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특히 코인육수는 잔치국수나 우동 등을 만들 때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반면 봉지라면이나 컵라면은 일반 식료품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굳이 가져오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밥솥도 현지에서 구매가 가능하지만 저는 한국에서 챙겨가서 굉장히 잘 사용했습니다.
옷은 현지에서도 살 수 있으니 많이 가져올 필요는 없지만, 2학기라면 생각보다 날씨가 춥기 때문에 따뜻한 겉옷을 가져오는 것이 좋습니다. 기온 자체는 영하로 떨어지지 않지만 가을부터 굉장히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패딩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탈 생각이면 튼튼한 우비도 가져오는 것이 좋습니다.
현지에서 구하기 어려워서 가져오면 좋은 것은 캐리어용 번호자물쇠(이곳에서는 열쇠자물쇠만 봤습니다), 빨래망, 여행용 공병, 욕실화 등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약인데, 네덜란드에서는 병원에 가기 쉽지 않기 때문에 종합감기약이나 진통제 등 평소에 쓰는 약을 충분히 챙겨오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2. 현지 물가 수준
식당 물가가 꽤 비싼 편이라고 느꼈습니다. 저렴한 것이 10유로대 초중반 정도였고, 그래서인지 친구들을 만날 때 외식을 하기보다는 포틀럭 파티를 많이 진행했습니다. 반면 식료품 가격은 매우 저렴했기 때문에 요리만 한다면 생활비는 많이 들지 않았습니다. 식료품점은 Dirk가 가장 저렴한 편이고 Plus나 Hoogvilet는 중간, 그리고 Albert Heijn가 가장 비싼 편이지만 그렇게 큰 차이는 못 느꼈습니다.
생필품은 가게마다 가격대가 달랐습니다. 한국의 다이소와 비슷한 느낌의 Action은 정말 저렴해서 가장 자주 이용했습니다. Blokker는 Action보다 조금 더 비싸고, Hema가 가장 비싼 편이었습니다. 올리브영과 비슷한 Etos는 한국보다 훨씬 저렴했지만 물건의 질이 그렇게 좋지 않다고 느껴져서 화장품은 한국에서 가져오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3. 식사 및 편의시설 (식당, 의료, 은행, 교통, 통신 등)
1) 식당
식당은 거의 방문하지 않았고 그나마 카페를 몇 차례 방문했습니다. 다만 네덜란드의 카페는 한국처럼 와이파이나 콘센트가 없으며 카공을 하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아이스 음료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예외적으로 I Scream Coffee는 콘센트와 와이파이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카공을 하는 분위기였고 저도 종종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IJssalon Roberto’s에서는 맛있는 젤라또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아시안 마트는 라이덴에 Toko New World 한 개만 존재하는데, 가게가 작고 야채가 항상 수급이 되는 것은 아니라 찾는 것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유일한 아시안 마트라서 자주 이용했습니다. 제대로 장을 보고 싶을 때는 헤이그의 Amazing Oriental을 가는 것이 좋습니다. 훨씬 넓고 종류도 다양하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2) 의료
네덜란드에서 병원을 가기 위해서는 GP(General Practitioner) 등록이 필요합니다. 집 근처의 병원에서 GP 신청을 하고, 미리 병원에 예약을 한 후에만 방문이 가능합니다. 더 큰 병원에 가고 싶어도 무조건 GP를 통해야 합니다. GP 등록은 1주일까지 걸릴 수 있으며, 웬만한 병원은 이미 환자가 꽉 차서 새로운 환자 등록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구글 지도 평점이 2점대로 낮은 병원에 등록해야 했습니다.
제가 병원에 등록한 것은 서울대 기숙사 지원 때문이었는데, 흉부엑스레이 검사 결과를 제출해야 해서 부득이하게 병원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라이덴에는 흉부엑스레이를 찍을 수 있는 병원이 없기 때문에 GP를 통해 헤이그의 병원을 연결 받았습니다. 이때 GP와 직접 얘기하지도 않고 병원의 데스크 직원과 통화를 한 것이 다인데도 그 상담 비용이 36유로였고, 흉부엑스레이 비용은 53.5유로였습니다. 다행히 AON에서 모든 비용을 보험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검사 결과는 하루 뒤에 나왔지만 한국에서처럼 인장이 찍힌 건강진단서를 발급해주지는 않았고, 제가 여러 차례 요구했음에도 네덜란드에 비슷한 개념이 없어서인지 직원 분들이 이해를 못하셨습니다. 결국 다른 형태의 서류를 제출했더니 서울대 기숙사 측에서 한국에 와서 다시 흉부엑스레이를 찍을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혹시 네덜란드에서 기숙사를 지원하실 분들은 최대한 미리 준비하시거나, 병원을 가는 과정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자취를 고려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3) 은행
교통카드를 만들 때 필요하기 때문에 네덜란드 계좌 개설은 필수적입니다. 보통 ABN Amro나 ING를 많이 하는 것 같았고 저는 ABN Amro를 이용했습니다. 계좌 개설을 할 때 실물 카드, 카드 비밀번호, 계정 활성화 코드를 따로 우편으로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다소 걸립니다. 그럼에도 ideal을 통한 온라인 결제가 편리했고, 생활하다 보면 트래블월렛이 안 되는 경우도 있어서 현지 계좌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ABN Amro 계좌로 송금할 때는 트래블월렛 앱을 통해서 했으며 별도의 수수료가 없었습니다.
4) 교통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네덜란드 철도청인 NS에서 OV-chip card를 만들어야 하며, 선불 개념의 무기명 카드와 후불 개념의 유기명 카드가 있는데 후자를 많이 사용합니다. 유기명 교통카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본인의 계좌가 필요합니다.
유기명 OV-chip card는 구독제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교환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것은 Dal Voordeel(평일 off-peak hour와 주말 40% 할인), 또는 Weekend Vrij(주말 무료)입니다. Dal Voordeel은 한 달에 5.95유로지만 2.95유로로 할인을 종종 하고, Weekend Vrij는 36.95유로입니다. 그리고 Weekend Vrij에 3.65유로를 더하면 평일 off-peak hour 40% 할인을 추가로 적용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 할인은 버스나 트램에는 적용되지 않고 기차에만 적용됩니다. 라이덴에서 암스테르담까지 편도로 대략 10유로, 라이덴에서 헤이그까지는 4유로 정도였습니다. 해외여행을 자주 간다면 Dal Voordeel이 경제적이고, 저는 주말마다 네덜란드 국내여행을 많이 다녀서 Weekend Vrij를 사용했습니다.
NS앱을 통해 기차 시간과 비용을 조회할 수 있고, 버스나 트램 정보를 얻을 때는 구글 지도를 이용했는데 크게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교량 문제 또는 공사의 이유로 특정 구간에서 기차가 며칠간 운행하지 않는 경우가 자주 있었기 때문에 공지를 잘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중교통 이외에 자주 쓰는 것은 자전거입니다. 자전거 대여는 보통 Swapfiets나 Easyfiets를 많이 사용하며, 저는 Swapfiets를 이용했습니다. 대여할 때 앱을 통해 신청하고 예약시간에 방문하기만 하면 돼서 편했고, 수리를 무료로 맡길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었습니다. 저는 핸드브레이크 자전거에 바구니를 추가해서 한 달에 25.9유로를 지불했습니다. 처음 네덜란드에서 자전거를 탈 때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데 저는 처음에 도로마다 방향이 정해져 있는 것을 모르고 역주행하기도 했습니다. 좌회전이나 우회전을 하기 전에 손을 뻗어서 방향을 표시해야 하며, 추월은 왼쪽으로 하기 때문에 속도에 자신이 없다면 오른쪽에 붙어서 달리는 것이 좋습니다. 차 신호등과 보행자 신호등, 그리고 자전거 신호등이 따로 있기 때문에 헷갈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5) 유심
Lebara 유심이 기숙사 기본 제공 물품에 있으며 OWL 오리엔테이션에서도 주기 때문에 별도로 구매할 필요는 없습니다. 유심을 끼우고 Lebara 앱을 통해서 쉽게 요금제를 구독하거나 데이터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 제 주변에서는 3+1 prepaid 요금제를 많이 이용했습니다. 굳이 international 요금제를 사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EU 국가에서 데이터 사용이 가능합니다.
4. 학교 및 여가 생활 (동아리, 여행 등)
- 뮤지엄카드
Museumkaart를 구매하면 네덜란드에 있는 대부분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무료로 방문할 수 있습니다. 비용은 1년에 75유로지만 보통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20유로를 넘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구매하는 것이 경제적입니다. 방문한 미술관과 박물관에 대해서는 2)와 3) 항목에서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 라이덴에서 가 볼만한 곳
* 자연사박물관: 규모가 크고 가족 단위의 손님이 많습니다. 동물 모형이 많고 다양한 주제로 전시가 구성되어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 일본박물관: 생각보다 작은 박물관이었습니다. 네덜란드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교류했던 국가가 일본인데, 관련된 역사가 궁금하다면 한번쯤 방문해봐도 좋을 듯합니다.
* Hortus Botanicus: 라이덴 대학교의 정원으로, 네덜란드에서 처음으로 튤립을 심은 곳이라고 합니다. 저는 너무 늦게 가서 꽃이 하나도 없고 조금 황량한 풍경이었기에 꽃이 핀 계절에 꼭 가보기를 추천 드립니다. 학생증이 있다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습니다.
* 민속학박물관(Wereldmuseum): 굉장히 넓어서 관람하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한국관이 있는 것이 특징이며,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라이덴 요새: 아마 OWL를 신청한다면 한번쯤 가게 될 장소입니다. 라이덴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고, 돌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습니다.
* Polderpark Cronesteyn: 제 기숙사 옆에 있는 공원입니다. 특별히 구경할 것은 없지만 자전거가 있다면 초록색 들판과 소와 오리들을 바라보며 기분전환을 할 수 있습니다.
- 네덜란드에서 가 볼만한 곳
해외여행은 이미 정보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국내여행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8월에 이미 많은 국가를 갔다 오기도 했고, 네덜란드의 도시들은 이후에 다시 오기 힘들 것 같아서 국내에 더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 위트레흐트: 기차로 40분 정도 가야 하는 큰 도시로, 볼거리가 많아서 많은 교환학생들이 여행하는 곳입니다. 저는 3번 정도 방문했습니다.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굉장히 낭만적이었던 하르 성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열차박물관은 규모가 상당히 크고 마치 테마파크처럼 볼거리가 많아서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오르간박물관은 한 시간에 한 번씩 영어로도 투어를 해 주시는데 거대한 오르간의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어서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미피박물관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은 박물관이라 굳이 방문할 필요는 없고 기념품점만 들러도 충분합니다.
* 로테르담: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항구 도시로, 이곳 역시 많은 교환학생들이 방문합니다. 저는 배를 좋아하기 때문에 만족한 여행지였습니다. 로테르담에는 큐브 하우스 등 독특한 건축물이 많으며, 해양박물관도 재미있었습니다. 보이만수장고는 특이하게도 일반 미술관과 다르게 수장고를 공개한 형태여서 인상적이었습니다. 투어를 신청하면 실제 작품을 보관하는 내부까지 들어가볼 수 있습니다.
* 암스테르담: 수도인 만큼 정말 다양한 관광지가 있습니다. 유명한 왕립 미술관과 반 고흐 미술관도 물론 좋았고 배를 좋아한다면 해양박물관도 가볼 만합니다. 운하박물관은 모든 전시가 자동으로 음성이 나오는 투어로 구성되어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안네 프랑크 하우스는 티켓팅이 어렵지만 그만큼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 잔담, 잔세스칸스: 암스테르담 근교로 많은 한국인이 방문하는 곳입니다. 레고마을 잔담은 별로 볼거리가 없어서 굳이 안 가셔도 될 것 같고, 풍차마을 잔세스칸스는 풍경이 매우 아름다웠기에 추천합니다. 아름다운 풍차와 운하를 보며 갈대밭을 거니는 기억이 소중하게 남아있습니다.
* 스헤르토헨보스(덴보스): 교환학생이 방문하는 것은 못 봤지만 네덜란드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남쪽에 트레킹을 할 수 있는 큰 들판이 있는데, 6개월 간의 교환 생활에서 잊을 수 없는 무척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 파란 하늘과 초록 들판, 그리고 푸른 물의 조화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마치 꿈길을 걷는 듯했습니다. 꼭 날씨가 좋을 때 가보시길 바랍니다.
* 헤이그: 라이덴과 가까워서 접근성이 좋습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볼 수 있는 마우리츠하우스 미술관이 유명하며, 비넨호프의 풍경도 매우 아름답습니다. 라이덴에서는 바다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저는 해변을 보기 위해서도 방문했습니다.
- 오케스트라
저는 오케스트라에 관심이 많아서 음악회를 자주 찾아 다녔습니다. 3대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RCO가 네덜란드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암스테르담의 콘체르트헤바우는 티켓 가격에 음료값이 포함되어 있어서 공연 시작 전이나 인터미션 때 무료로 음료를 마실 수 있습니다. 커피, 차, 주스, 와인, 맥주 등 다양한 음료가 있고 비스켓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연 4시간 전에 17유로로 티켓을 구매할 수 있는 청년 할인 제도도 있습니다. RCO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네덜란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나 라디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괜찮았습니다. 콘체르트헤바우는 지어진 지 오래 된 만큼 내부가 상당히 화려하고 낭만적인데다 음향도 좋았지만, 단차가 하나도 없어서 시야가 가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 단점이었습니다.
헤이그에 있는 AMARE라는 공연장도 방문했는데, 손열음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공연장이 새로 지어져서 매우 깔끔했으며 음향도 괜찮았기 때문에 이곳에 방문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운동
스포츠센터인 USC 구독권을 통해 다양한 운동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요가, 필라테스도 좋았고 줌바도 재미있었습니다. 만약 줌바를 한다면 Carla 선생님을 추천 드립니다. Club Battle이라는 생소한 운동도 해 봤는데, 음악에 맞춰서 주먹을 날리거나 발차기를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선생님께서 의욕이 매우 넘치셔서 재미있게 할 수 있었습니다.
IJshal de Vilet도 학교 스포츠센터이며 이곳에서는 스케이트를 탈 수 있습니다. 빙상의 나라답게 사람들이 스케이트를 일상적인 운동처럼 즐기는 느낌이었고, USC 회원권이 있다면 신발 대여까지 총 8.2유로에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스링크는 2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2층은 중간이 뚫린 거대한 타원 형태로 매우 넓었습니다. 한국의 아이스링크보다 훨씬 쾌적하고 시설이 좋아서 스케이트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5. 안전 관련 유의사항
자전거를 탈 때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교환학생들 중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다친 경우를 몇 번 봤습니다. 저 역시 하굣길에 자신감에 차서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바리케이드 사이를 통과하다가 넘어진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네덜란드에서는 자전거 도난 사고가 굉장히 빈번하기 때문에 자전거를 세워둘 때는 열쇠로 잠그는 것을 꼭 잊지 않아야 합니다.
라이덴의 치안은 굉장히 좋다고 느꼈습니다. 라이덴에서는 노숙자를 본 적이 없고, 한밤중에 길거리를 다녀도 한국과 비슷하게 안전하다고 느껴졌습니다. 학교에서 자전거 열쇠를 잃어버린 적이 있는데 lost & found에서 바로 찾을 수 있었습니다.
6. 기타 유용한 정보
가을과 겨울에 날씨가 매우 좋지 않으므로 최대한 미리 여행을 많이 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겨울에는 거의 매일 비가 내렸고, 하루에도 몇 번씩 파란 하늘과 비바람이 번갈아 나타났습니다. 우박도 종종 내렸고, 무엇보다 바람이 매우 강해서 자전거를 타다가 내려서 끌고 가야 했던 적이 많습니다. 우산을 쓰려 해도 바로 뒤집혀버려서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라이덴의 가장 큰 축일은 10월 3일 Independence day입니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것을 기념하는 날로, 라이덴 곳곳에서 축제가 열립니다. 놀이기구들이 며칠 만에 만들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비용은 10~15유로 정도로 비싸지만 회전그네는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높이 올라가서 라이덴의 시내를 모두 내려다볼 수 있고 재미있었습니다.
라이덴에는 영화관이 2개 있습니다. 저는 이용한 적이 없지만, 가 본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영화 도중에 인터미션이 있다고 하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열쇠를 집에 두고 외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만약 DUWO 사무실 운영시간 내라면 멀더라도 걸어가서 임시 열쇠를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비싼 비용을 내고 사설 업체를 불러야 합니다. Sigmaplantsoen의 경우 문을 닫으면 자동으로 잠기는 시스템이어서 비슷한 일을 겪은 학생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저 역시 열쇠를 잊고 외출해서 30분 동안 DUWO 사무실로 걸어가야 했습니다.
필름 현상을 맡길 생각이라면 개인 가게에 맡기거나, 한국에 돌아가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HEMA에서 필름 현상을 신청했는데 사진을 받기까지 한 달이 걸렸고, 디지털 파일을 받는 데는 며칠이 더 걸렸습니다. 그리고 인화한 사진 중 출력할 사진을 따로 선택할 수 없고 일괄 출력되는 시스템이어서 불편했습니다. 가격은 한 롤에 14유로였습니다.
Ⅵ.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는 소감
교환을 가면서 한 다짐은 ‘타인과 비교하지 말자’였습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여행도 좀 다녀야 하지 않을까, 외국인 친구도 사귀어야 하지 않을까, 파티 같은 것도 가봐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에서 해방되어 온전한 저를 마주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아늑한 기숙사에서 안주하며, 온전히 제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했습니다. 여행을 가기 귀찮아서 몇 주간 라이덴에서 쉬는가 하면 혼자서 즉흥적으로 여행계획도 세워보고, 어떨 때는 파티에 나가기를 거부했고 또 어떨 때는 친구와 함께 놀았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것은 정말 재미있었고, 아름다운 마을 풍경을 보며 자전거를 탈 때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이 기분 좋았습니다. 스포츠센터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함께 운동 수업을 들을 때마다 왠지 모를 유대감이 들었습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도 거의 없으면서 길거리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네덜란드어가 무척이나 기꺼웠습니다. 베를린에서 사 온 차를 우려서 소파에 앉아 혼자 조용히 마시는 순간이 기다려졌습니다.
이런 순간들에 어쩌면 ‘행복’이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을 듯합니다. 어찌 보면 외딴 장소에서의 고립을 통해 제가 어떤 사람인지를 더욱 잘 알게 되었고, 한국에서 느끼지 못했던 즐거움을 배웠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했습니다.
파란 하늘과 붉은 벽돌집, 그리고 깨끗한 운하가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귀국한 지 몇 달이 되어서인지 마치 꿈처럼도 느껴집니다. 그때의 기억에 책갈피를 끼워두고, 소중히 간직한 채 앞으로를 살아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