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환 프로그램 참가 동기
돌아온 지금, 귀국보고서에 쓸 미사여구를 아무리 궁리해 보아도 나는 “그냥” 교환학생을 간 사람이다. 외국인 친구를 사귀려고, 외국에서 살고 공부해보고 싶어서,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어서, 영어를 잘하고 싶어서, 실컷 놀고 싶어서 …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주변에 교환학생을 안 다녀온 사람들과 다녀온 사람들 모두 교환학생을 추천했다. 부모님의 반대에 반작용으로 우겨서 온 게 더 클지도 모른다. 솔직하게는 도피의 목적도 컸다. 24-1을 한국에서 다녔다면 7~8학기 졸업을 하게 됐을 것이다. 그러기엔 누가 대학원을 붙여준다고 하지도 않았고, 별다른 진로가 정해진 것도 아니었다.
결과적으로는 많은 것을 얻어 돌아왔지만, 그것을 얻을 목적으로 교환 프로그램에 참가하겠다고 다짐한 것은 아니었다. 명분을 찾지 못한 채 교환을 막연히 가고 싶어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이 수기가 위로가 되길 바란다.
2. 파견대학 선정
본인은 본모집 기간이었던 23년 7월에 독일어권 국가 여행을 하고 있었기에 신청을 아예 놓치고, 추가모집에만 지원하였다. 다른 대륙이 아닌 유럽을 가고 싶은 생각은 확고하였고, <프랑스어권이나 스페인어권이 아닌 지역, 한 학기 교환, 학사 사회학 전공수업이 있어야 함>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독일어에 흥미가 있고 오케스트라 공연 관람을 좋아했기에 독일어권을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기준1. 내가 지원할 자격이 있는가?
- 제2외국어 성적: 추가모집에서 남은 학교들은 제2외국어 성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 과정에서 많은 독일어권 학교들을 날렸다.
- 영어 성적: TOEFL을 IELTS 등으로도 변환해서 인정해 주는지와, 토플 성적이 파트별로도 커트라인을 넘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영국 학교들도 토플을 잘 인정해 준 덕분에, 영어성적 때문에 고민하거나 포기한 학교는 다행히 없었다.
- 전공: 자유전공학부 학생이라면 주전공이 두 개일 텐데, 수강신청을 받아줄 만한 강좌가 열리는지 확인해보아야 한다. 나는 연합전공 정보문화학을 가지고 애매하게 고민하느니 사회학 수업만 듣기로 하였다.
기준2. 24-2 일정과 상충되지 않는 학제
- 기준1만으로는 별로 걸러지는 학교가 없어서, 이 기준2가 빠른 선택에 큰 도움이 되었다.
- 기준1에서 걸러져서 제2외국어 성적을 요구하지 않는 독일어권 학교들은 학제가 Apr-Sep였다. 근데 그러면 복학, 24-2 인턴 지원, 종강 후 여행이 모두 애매해질 것 같았다. 양해를 구하면 시험을 일찍 보게 해주는 등 조치를 취해 준다지만, 굳이 늦은 개강과 늦은 종강이 메리트가 될 일은 없을 것이었다.
- 그래서 빠른 개강과 종강을 하는 학교들로 선택하게 되었다. 학제가 Jan-Jun인 학교들을 고르자, 7개의 선택지가 남았다. 영국 3개교, 아일랜드 2개교, 핀란드 2개교였다.
독일어권을 포기한 이후 다른 6개교를 탈락시켜 리즈대학교를 선정하게 된 기준은 상당히 복합적이다. 기후, 도시 규모(얼마나 외딴 곳인지), 기숙사 제공 가능성, 학교의 규모, 학교의 학업 수준 등이 있었고, 아무래도 상대평가인 만큼 "서울대 내 선발 인원"도 고려하게 되었다. 추가로는 학교로부터 공항까지의 교통편 및 소요시간, 거주할 도시의 문화생활 규모, 파견국에 따른 비자의 필요 유무 등도 고려하면 좋을 것이다.
리즈는 영국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이며, 리즈대는 영국에서 5번째로 큰 대학이고 내게 주어진 일곱 가지의 선택지 중 세계 대학 랭킹(QS)이 가장 높은 학교였다. 기숙사의 종류가 매우 많으며, 학교가 도심 및 기차역과 도보 내 거리에 있고, 물가도 런던보다 훨씬 저렴하다. 서울대 추가모집 인원도 7개교 중 가장 많았다. 리즈-브래드포드 공항까지는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으며, 런던까지 내려가지 않아도 근처 도시인 맨체스터 공항에서 출발하면 유럽 각국 여행지에 웬만하면 다 갈 수 있다. 영국 6개월 교환학생의 경우 비자는 필요하지 않아서 많은 노력을 아낄 수 있었다.
3. 본교선발 이후 순서대로 처리한 일들
- 2023-10-17: 리즈대에 지원 완료
본교에서 붙자마자 지원서를 썼지만 리즈대 홈페이지 이슈로 10월 17일에서야 제출 완료했다.
지원서에는 500단어짜리 자기소개 에세이와, 이름 / 주소 / 서울대 성적 / 공인영어성적 / 긴급연락처 / 여권 사본 정도만 들어간다.
- (2023-10-31: 리즈대 지원 마감일)
- 2023-11-03: 리즈대 합격 통보
같이 지원한 서울대 친구들 보니 합격날이 다 동일하지는 않은데, 단과대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
- 2023-11-04: 기숙사 신청
미리 계획해두고 있다가 리즈대 합격 다음날인 11월 4일에 신청을 완료했다. 참고로 마이스누 같은 학교 포털에 가입하기 전에 accommodation portal에 따로 가입하는 구조이다.
<기숙사 선정 기준>
리즈대는 기숙사 여러 개가 도시 곳곳에 분산되어 있다. 기숙사가 아주 많은데 1지망만 써야 해서 나는 다음과 같은 표를 만들었다. Fee per week 순으로 정렬한 것이다.
shared bathroom(공용 욕실) vs en suite(1인 1욕실): 태어나서 혼자 욕실을 써본 적이 없고 필요성도 못 느껴 저렴한 shared bathroom을 선택했다. Shared bathroom이면 화장실 청소를 할 필요가 없음! 참고로 en studio라는 단어를 본다면 그건 공용공간이 전혀 없는 자취방 느낌의 구조이다. 워낙 비싸서 고려대상에 없었다.
- self-catered vs catered: catered는 기숙사 식당이 있고, meal plan을 결제해서 거기서 밥을 먹는 방식이다. self-catered는 플랫에 있는 주방에서 직접 밥을 해먹는 것이다. 나는 self-catered를 애초부터 생각하여 저 표에도 self-catered 옵션의 기숙사들만 적었다.
이외 더 고려한 것으로는
- 학교까지의 거리: 사회대 건물이 학관이랑 가까워서 학관 기준으로 생각했다.
- City Centre 접근성: 학관으로부터 똑같이 15분 거리라도 어느 방향인지에 따라 city centre까지의 거리가 멀 수 있다.
- 근처에 슈퍼마켓이 있는가 (수업 끝나고 장 봐서 집에 갈 수 있는가)
- Laundry on Site: 무조건 기숙사 내에 세탁 서비스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세탁실에 따로 내려가서 돈 내거나 카드 찍고 쓰는 게 아니라 내 주거공간에 바로 세탁기가 있으면 더 좋다.
나의 1지망은 Montague Burton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shared bathroom & self-catered인 기숙사들 중에서 학교랑 가장 가까워서였다. 다른 몇 기숙사와 달리 세탁비를 내지 않고 자유롭게 플랫 내 세탁기와 건조기를 사용했다. 기숙사비는 5개월 2993파운드로, 월세 100만원 정도 된다.
- 2023-11-04: 항공권 예매
개강은 1월 29일부터이고 기숙사 공식입주일이 1월 19일부터라, 가족들과 함께 토요일 밤에 공항에 갈 수 있도록 1월 21일 새벽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KLM 편도 학생 요금860500원(성인보다 조금 더 비싸지만 위탁수하물 23kg*2개, 기내수하물과 부속품 총 12kg)으로 선택하였고, 경유지인 암스테르담에서 layover 하고 싶어서 경유시간을 9시간 반 잡았다. 참고로 이러한 장거리 항공권은 평균적으로 21주 전에 가장 싸고 그 이후부터는 계속 비싸지기에 빨리 결제하는 것이 좋다.
- 2023-11-09: 수강신청
수강신청을 Microsoft Office Form으로 제출한다. 교환학생을 받아주는 강의인지의 여부, 시간표 등을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시간표가 안 간단한 표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Seminar, Workshop, Tutorial 등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non-lecture형 수업들은 격주로 진행되거나 학기 중에 한두 번이 끝인 경우도 많다. 그리고 워크샵 같은 경우 분반별로 요일과 시간이 다르기도 해서 어차피 공강에 대한 확신은 가지지 못하고 수강신청을 했다. 60 credits를 채워야 하므로 렉쳐 요일을 고려하여 세 과목을 신청했다. (사회학 수업을 듣는 한 과목당 20 credits였는데, 기계공학을 전공하는 내 플랫메이트 Cristian은 한 과목당 10 credits라 6과목을 들었다고 한다)
- 2023-11-27: (서울대) 국외수학허가신청
- (2023-11-30: (서울대) 국외수학허가신청 마감일)
- (2023-12-01: 기숙사 신청 마감일)
- 2023-12-08: 기숙사 배정 통지
1지망이 되었고, 방 번호를 포함한 기숙사 주소도 나왔다. 연락을 받은 지 4일 내에 (1) 수락 또는 거부 의사를 밝히고 (2) 수락한다면 contract를 쓰며 (3) 보증금 200파운드를 내야 한다. Flywire라는 국제 계좌이체 서비스가 웹사이트 내에서 지원되어, 바로 보증금을 냈다.
- 2023-12-08: Registration 및 student portal 가입
학생으로 리즈대학교에 정식 등록하는 절차이다. 학교 사이트를 가입하는데 아이디는 정해준 것을 써야 하고 초기 비밀번호도 정해져 있다. 내가 쓰는 비밀번호로 변경하기 위해 초기화하려면 매우 귀찮은 절차들을 거쳐야 했다. 그리고 Microsoft Authenticator와 Duo 앱을 설치했다. 로그인을 하려면 이 앱에서 핀 번호를 받거나 푸시 알림을 눌러서 이중 확인을 해야 했다.
또한 Student Contract를 작성한다. 등록금은 어떤 식으로 낼 건지(교환학생의 경우 파견교가 아닌 본교에 낸다), future career에 대한 계획의 정도, 종교, 채식 여부, 지병, 성 정체성 등 학생을 파악하기 위한 다양한 정보를 물어본다.
- 2023-12-09: UniKitOut에서 생필품 시키기
UniKitOut는 영국 학교 기숙사로 생필품을 배달해주는 서비스이다. 학교에서 알려주는 할인코드도 있어서 10%정도 할인을 받았다. 기숙사 주소가 나오자마자 주문했다. 입주일에 맞춰서 내 방 안까지 미리 배달해주기 때문에, 관리실에서 무겁게 들고 올 필요도 없었다.
기본 1인세트를 선택하면 주방용품에서 불필요한 게 많았다. 그래서 침구세트(Premium (Linen, Duvet & Pillow) Double / Herringbone Stripe), 옷걸이 10개, 헤어드라이어, 수건 3장을 주문했고 총 130파운드 정도 들었다.
- 2023-12-12: 기숙사 Instalment Plan 제출
일시불과 할부(2월부터 시작해 매월 1일에 네 번씩 나눠서 내기) 중 선택 - 나는 할부를 선택했다.
- 2023-12-19: 수강신청 결과 이메일 통지
세 과목 중 두 과목 수강신청에 성공했다. 나머지는 이메일로 추가신청을 하는데, 한국의 정원외신청과 비슷한 느낌이다.
- 2023-12-19: Accommodation Induction
입주 절차 신청 사이트가 열렸다. 이날 내 기숙사의 입주일은 공식입주일인 1월 19일이 아닌 1월 24일부터라는 것을 알게 됐다. 19일부터 입주라는 공지를 보고 21일에 도착하도록 비행기 결제해둔 상태였는데 말이다. Accommodation에 연락해 보니 기숙사 입주날보다 입국날이 선행할 경우, 그동안은 저렴한 가격(1박 15파운드)에 비어 있는 다른 기숙사를 이용하게 해 준다. 근데 거기는 기본적인 침구류가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래서 비행기표를 미룰까 했지만 수수료가 더 많이 드는 상황이었다.
- 2023-12-20: 에어비앤비 결제, arrival slot 등록
따라서 기숙사 들어가기 전 리즈에서 3박 할 에어비앤비를 결제했다. 그리고 1월 24일 오전 10시 타임으로 기숙사 입주를 신청했다. 참고로 1월 24일과 1월 28일 사이에는 학교 셔틀 서비스를 신청하면 맨체스터 공항이나 리즈-브래드포드 공항에서 리즈대 코치버스를 타고 학교에 갈 수 있었다. 그리고 1월 19일부터 입주하는 모든 사생들은 신청 시 Welcome Food Box와 무료 유심을 제공받는다. 1월 21일에 도착한 나는 공항에서 우버를 탔고, Welcome Food Box는 입주날 책상에 놓여 있었다. 서울대 친구들을 보니 학교 셔틀 신청했는데 안 와서 어쩔 수 없이 우버 타기도 했다.
- 2023-12-28: 기프가프 유심 배송 신청
- 2024-01-03: Confimation of Accommodation
학교에서 "너 체크인은 1월 24일인데 1월 21일에 영국 도착하네. 그동안 숙박은 어떻게 할 거니?" 라는 이메일이 와서 에어비앤비에서 잔다고 답장을 보냈다.
- 2024-01-05: Crime and Society 추가 수신 (이메일 전송)
- 2024-01-08: Crime and Society에 대한 이메일 답장 수신 (웨이팅 리스트에 넣어놓겠다)
- 2024-01-14: OIA 장학금 신청
- 2024-01-18: Crime and Society 추가 수신 수락
- (2024-01-21: 현지 시각 리즈 도착)
- 2024-01-22: Monzo 계좌 개설
영국의 모바일뱅크 계좌이다. 해외송금 1번에 수수료 5000원을 부담하기 싫어 거의 사용하지 않았지만, 기숙사 보증금 환급 등을 받을 때는 영국 계좌가 있는 것이 매우 유용하다. 현지 친구들끼리 송금하는 건 Paypal을 쓰면 된다.
- 2024-01-23: 본부 파견교환학생 도착신고
현지 거주지 주소와 연락처를 제출한다.
- 2024-01-23: Student Identity Check
여권 사본이랑 리즈대 학생증에 들어갈 사진을 온라인으로 제출했다. 영국 현지 도착했을 때 할 수 있는데, BRP가 필요한 사람들 때문인 듯하다. 바로 다음 날 수락 메일이 왔고 학생증 받으러 갈 예약 slot을 입력할 수 있었다.
- 2024-01-27: Inventory Inspection Form 제출
비품점검표를 온라인으로 작성하며 입주일로부터 7일 내에 제출해야 한다. 라디에이터는 잘 작동하는지, 전등은 잘 들어오는지 등의 항목이 있다.
4. 출국 전에 이건 꼭 하고 가세요
1. 건강검진, 스케일링
비자나 BRP(Biometric residence permits)가 없는 입장에서는 앞으로 6개월간 병원이나 치과에 갈 일이 최대한 없어야 할 것이었다.
2. 휴대폰 정지
출국해 있는 동안 번호를 정지시켜야 요금이 안 나간다. 거의 출국 전날에 신청했는데, 승인에 2-3영업일 소요될 수도 있다고 해서 좀 미리 해도 좋을 듯하다. 생각보다 문자 인증할 일이 많으므로 반드시 문자수신 가능한 버전으로 신청해야 한다.
3. 공기계 구하기
휴대폰 도난에 대한 걱정보다는, 한국번호 문자인증 하려고 유심을 갈아끼우는 것이 성가시기 때문에 있으면 좋을 듯하다. 문자만 수신할 수 있으면 되니 헌 기종도 괜찮다.
4. 트래블카드를 많이 만들어두기
나는 결제에 사용할 수 있는 체크카드를 다섯 장 가져갔으나, 주로 트래블월렛과 하나은행 트래블로그를 사용했다. 다양한 은행의 카드를 만들어두는 것이 좋다. 나는 하나은행이 먹통이 된 적이 있었어서, 신한은행이나 우리은행의 트래블카드를 가져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5. 은행 업무
- 해외원화결제기능 차단: 항상 꺼둬도 됨
- 계좌별 일일 이체 한도 체크하고, 해제할 수 있으면 최대한 해제하기: 하루에 숙소나 비행기를 많이 예약한다면 약 200만원의 기본 한도를 금방 넘는다.
6. 카드별 일반결제 등록
외국 사이트는 카카오페이나 페이코로 결제할 수 없으므로 카드 번호를 입력해서 결제하는 방식, 소위 말해 “일반결제”를 주로 이용하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이트에서는 은행 팝업창으로 연결되며 “일반결제 등록이 필요한 카드입니다”가 뜨고, ARS 전화인증을 요구한다. 한국번호를 정지시켜 둔 후 출국하므로 전화 수신이 안 돼서 ARS 인증도 할 수 없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일반결제 등록 해오자.
7. 금융인증서/공동인증서/아이핀 만들어두기
은행 또는 공공기관 쪽 본인인증을 할 때 해외에 있으면 휴대폰 인증이라는 것 자체가 어렵다. 한국 유심으로는 문자 수신만 받을 수 있는 상태인데, 항상 공기계나 한국 유심을 들고 다닐 수는 없다. 무엇보다 상당수의 금융기업이 전화인증을 요구하는데, 상기했듯이 여러분의 폰은 정지되어 있으므로 전화 수신이 안 되어 ARS 인증도 할 수 없다. 이럴 때 금융인증서나 공동인증서나 아이핀이 미리 만들어진 상태라면 매우 편리할 듯하다.
8. 악기 점검 (특수 케이스)
본인은 교환교에 오케스트라 동아리가 있음을 확인하고, 동아리를 하기 위해서 평소에 불던 악기인 오보에를 가져갔다. 자주 가는 악기사에서 악기 상태를 확인받고, 비행기 등에서의 취급 주의사항을 듣고 가면 좋을 듯하다.
9. 무비자일 경우: (파견국에서의) 출국 또는 (한국으로의) 귀국 항공편 마련
인천에서 수하물 맡기면서 항공권 발급받을 때 항공사 직원이 <체류증명서 / gov.uk에서 발급한 문서 / 영국에서 출국하는 항공권> 중 하나를 요구했다. 그러나 무비자로 들어간다면 1, 2 문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다행히3월에 영국을 빠져나가는 항공권을 두 개나 예약해 둬서, 그것 중 하나를 보여주었다. 귀국 계획이 전혀 없다면, 인천공항 도착해서 무료 취소되는 항공권 하나 끊어놓고 직원한테 보여주고 바로 환불해도 된다(직원이 내게 제안한 방식이다).
5. 짐싸기
23kg 캐리어 두 개에 짐을 쌌다. 리스트를 모두 적자니 너무 길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만 적겠다. 유럽도 다 사람 사는 곳이고, 요즘은 Amazon이나 Temu에서 배송도 곧바로 온다. 무언가를 잊고 안 가져왔다고 해도 대부분의 물건을 현지에서 충분히 구매할 수 있고, 교환학생을 유치할 수 있는 대학이 있는 도시라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것이라 아시안마트도 근처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여기서 가져가지 않으면 도착해서 구매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수하물 무게가 허용하는 대로 짐을 꼼꼼히 싸는 것을 추천한다.
- 옷: 하의를 많이 가져가는 것이 좋다. 계절이 바뀌면서 상의는 Primark 등의 저렴한 브랜드에서 사 입어도 괜찮은데, 체형에 맞는 하의는 항상 찾기 힘들었다. 버려도 되는 옷을 가져가서 많이 버리고 왔다. 1월 말 기준으로 리즈는 도착했을 때 춥긴 했지만 “장갑을 안 끼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정도”였다. 리즈에서 생활할 때는 패딩이 필요하지 않지만, 북유럽 등 추운 나라로 여행을 갈 예정이라면 패딩을 챙기는 것이 좋다.
영국 옷의 키워드는 <방수>이다. 방수가 되는 두꺼운 외투 하나, 얇은 외투 하나를 각각 챙겨올 것을 추천한다. 비가 자주 오는데, 오는 정도가 <우산을 쓸 정도는 아니거나 / 우산을 써도 (바람 등으로 인해) 소용이 없거나>의 둘 중 하나라서 방수 옷을 뒤집어쓰는 것이 더 나으며 영국인은 우산을 쓰지 않는다. 또한 방수가 되는 신발이 하나 있으면 좋다. 나는 등산화를 현지에서 구매했다.
- 전기장판/전기밥솥: 전기장판은 평소에 잘 쓰지 않아 안 챙겼고, 결국 라디에이터가 잘되어 있어서 괜찮았다. 그리고 평소에도 쌀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 전기밥솥을 가져가지 않았고, 가끔 냄비밥을 해먹어도 충분했다. 이 두 물건은 부피가 큰 편이기에 필요한 사람만 가져가면 될 것이다.
-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나만 아주 유용하게 쓴 ‘습식수건’: 흡수력이 좋으며 부피가 아주 작은 수건이다. 한국에서는 주로 수영을 갈 때 사용하곤 했는데, 종강 후 배낭을 메고 3달 정도 여행을 다닐 때 이 수건 한 장으로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 귀국을 준비할 때: 가져온 두 캐리어 중 하나는 지퍼가 고장나서 버렸고, 다른 하나는 먼저 한국으로 부쳤다. 종강 후 여행을 다닐 때에는 100L 백팩을 사서 도합 15Kg 정도의 짐으로 줄여 어깨에 메고 다녔다.
6. 영국에서의 생활
- 외식: 영국은 외식에서 큰 메리트가 없는 나라이다. 샤로수길 느낌의 저녁 외식 한 번을 하려면 15파운드(26,000원)는 감수해야 했다.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체인점으로는 Slim Chickens, Nando’s 등을 그나마 추천한다. 가볍게는 Pret a Manger의 샌드위치들이 맛있고, Tesco Express에서 Conference Pear, 청포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Mini Brownie Bites를 꼭 사먹어야 한다. 리즈에 산다면 <Just Grand! Vintage Tea Room>에서 스콘과 크림티를 먹어보길 바란다. 런던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이고 맛은 훌륭하다.
- 식료품 요리: 삼시세끼를 기숙사에서 해먹으면 1.5주에 30파운드 (52,000원) 정도만 들 정도로 식료품 가격, 특히 채소는 저렴하다. 본인은 요리를 많이 해본 편은 아니지만 (1) 좋아하는 음식이 확실하고 (2) 확실히 좋아하는 음식은 질리지 않고 계속 먹을 수 있으며 (3) 한식이 전혀 필요없는 사람이다 (김치 싫어한다).
이러한 내게 식료품이 저렴한 영국은 천국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항상 과카몰리를 만들어 두었고, 큰 병에 든 올리브를 사서 식사 때마다 먹었다. 양파, 버섯, 당근, 가지, 토마토를 상시 구비해 두었고 기분에 따라 파프리카, 브로콜리도 추가해서 샀다. 채소들을 썰어서 냉장보관한 뒤 식사 때마다 한 줌씩 꺼내 볶고, 카레 소스나 토마토 소스 등을 추가하면 훌륭한 요리가 되었다. 여기에 밥이나 또띠아나 빵&치즈를 곁들였다. 단백질로는 달걀, 닭고기(Chicken thigh), 연어, haddock fillet, 소시지 등을 식사마다 돌려 가며 먹었다.
식료품점의 종류가 많은데 가격은 Waitrose > M&S > Tesco > Co-op> Sainsburys=Morrisons > Iceland이라고 생각하며, 품질은 가격에 반비례한다. Asda나 Aldi, Lidl등의 독일계 슈퍼마켓은 큰 규모로만 가끔 있는데, 접근성은 좋지 않은 편이나 가장 가성비 있다. 나는 Morrisons를 애용했으며, 아주 잠깐만 나갔다 오고 싶은 경우에는 기숙사에서 가장 가까운 Tesco Express에 다녀왔다.
- 식수와 Tea: 영국의 석회수를 걱정하여 bottled water를 사먹거나 브리타 정수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잦다고 들었으나, 내 플랫에서는 물을 끓여 차로 만들어 마시거나 귀찮아서 그냥 수돗물을 마셨다. 다른 유럽에서도 페트병 물을 사 마셔 본 적이 없는데, 6개월 정도면 건강에는 큰 문제 없다.
한편 영국에서 가장 맛있는 홍차 브랜드는 Yorkshire Tea이다. 괜히 비싼 TWG, Fortnum&Mason, Whittard 등을 사지 말고 무조건 Yorkshire Tea를 사서 먹자. 본인은 영국을 떠날 때 티백 400개를 사서 왔는데 친구들에게서 광기라고 놀림 좀 받았다.
- 한인 사회: 한국인 교환학생 WhatsApp 그룹채팅방이 있다고 들었지만, 초대받은 적은 없다. 서울대에서는 나 포함 6명의 친구들이 같은 학기 파견을 나와서 종종 어울려 다녔다. 한편 나는 기독교인인데, 리즈 한인교회에서 한국인 교환학생들과 유학생들을 많이 만나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 학생 할인: 다른 유럽 국가들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영국도 학생할인이 잘 되어 있다. Young Person’s National Express Card과 16-25 Railcard를 발급받아 각각 고속버스와 기차 할인을 받을 수 있다. Student Pulse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유명한 클래식 공연들을 학생 가격 10파운드에 볼 수 있으며, UniDays로 많은 프랜차이즈 가게 할인을 받을 수 있다. Amazon Prime 도 학생 계정으로 가입하면 6개월이 무료이다. 각종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입장료도 학생할인이 있으니, 혹시 적혀 있지 않더라도 학생 할인이 되냐고 꼭 물어보자.
7. 학교생활
- 수업
수업은 Lecture, Seminar, Tutorial로 구성된다. Lecture는 서울대학교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강의 형식이고, 내가 들은 수업들은 수업마다 교수가 여러 명이었다. 교수 두 명이 같이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고,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누어 진행하기도 하였다. Seminar는 조금 더 학생 토론 위주의 수업인데 비정기적으로 진행한다. 격주로 진행한 수업도 있었고, 한 학기에 두 번 seminar를 진행한 수업도 있었다. Tutorial은 강의를 복습하고 추가 자료에 대해 논의하는 형식으로 조교가 진행하는데, 이것도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수업이 있었다.
한국과 비교했을 때 영국 대학 수업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출석이 의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Lecture, seminar, tutorial 모두 “참여 권장”이며 출석을 부르지 않는다. 강의실 벽에 있는 QR코드를 찍으면 출석을 증명할 수 있지만, 그것은 학교 재학 상태만을 증명할 뿐이지 수업 성적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몇 번은 QR코드를 까먹고 찍지 않았더니, 건강이 걱정된다며 학교 측으로부터 이메일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 그뿐이었다.) 기말 에세이 주제를 어느 정도 정해갈 즈음부터는 아무도 tutorial에 오지 않았다. 그래서 조교님과 단둘이 강의실에 앉아 에세이 방향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마지막에는 여행 얘기만 잔뜩 나누고 집에 온 적도 있다. 평가는 에세이 100%로 이루어졌다(귀국 계획이 불확실하여, 기말고사로 평가하는 과목을 수강신청하지 않았다).
나는 사회학 수업인 <Debates in Childhood and Youth>, <Crime and Society>, <Sociology and the Climate Crisis>의 세 과목을 수강했다. 세 과목에서는 한국에는 없는 사회 현상들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예를 들면 DCY에서는 이주민 아동에 대해서, C&S에서는 Drugging과 Spiking에 대해서, SCC에서는 영국 전역에서 일어나는 홍수 및 침수에 대해서 다루는 주가 있었다.
한편 수업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은 쉽지 않았는데, 사회학 이론 수업의 특성상 팀 프로젝트가 없는데다 출석마저 각자 들쭉날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전공을 하는 교환학생은 많지 않은 듯했다.
- 동아리: 정말 다양한 동아리가 있고, 나는 그중 오케스트라에 관심이 있었으나 2학기에 가입하려면 LUUMS(Leeds University Union Music Society) 중 오디션을 보지 않는 합주에만 참여할 수 있었다. 관악기인 오보에를 가져갔기에 Sinfonia(관현악합주) 또는 Concert Band(관악합주)의 선택지가 있었고, 두 개 다 가보다가 이후에는 Concert Band에만 정기적으로 출석했다. 주1회 연습을 하며 봄에는 근처 교회를 빌려 공연도 하나 올렸다.
동아리의 특성상 교환학생이 정말 없는 동아리였다. 이미 자기들끼리 친한 친구인 분위기라 일상까지 함께하는 친구가 되지는 못했지만, 오보에 친구들 둘과는 꽤 잡담을 나누었으며 인스타그램 친구로 남아 있다. 학교 내의 Pub에서 하는 뒤풀이도 종종 따라갔다.
- 기숙사 및 교환학생 행사: 내 기숙사는 두 동(E동, M동)만 교환학생 전용 동이었는데, 기숙사에서 하는 행사에 참여하면 교환학생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었다. 현지 영국인 학생들은 주로 18살짜리 신입생들이며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편이라 잘 참여하지 않는 듯했다. 리즈대학교에서는 매주 월요일 저녁에 Global Café라는 세션이 열린다. 나는 오케스트라 연습과 겹쳐 가본 적이 없지만, 이곳에 가면 다양한 교환학생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고 한다.
- 시설
The Edge (수영장 위주 리뷰): 리즈대학교 체육시설이다. 긱사생 복지로는 The Edge Membership이 무료로 주어진다. 원래 한 달 24파운드짜리다. 필라테스나 요가, 댄스 같은 수업을 그때그때 신청해서 들을 수 있고, 평일 6.30-11.30am과 주말 하루종일은 자유수영 및 헬스를 할 수 있다. 인원 몰리지 않게 하려고 한 것 같은데 웹사이트에서 30분 단위로 나와 있는 시간 예약하고 가면 된다. 정작 가면 시간제한이 없고, 예약하고 늦게 나타나도 되는지는 모른다.
나는 수영장을 주로 이용했다. 탈의실과 샤워실은 unisex이고, 보증금 1파운드를 가져오면 락커를 쓰기 용이하지만 치안이 안전하므로 다들 락커 안 잠그고 사용한다. 레인은 25미터이고 포스코랑 비슷한 8레인 정도의 규모이다. 샤워실 옆, 수영장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자그마한 Steam Room(습식 사우나 느낌)과 Sauna가 있다. 25m 중 절반은 깊이가 2m으로 고정되어 있고, 나머지 절반은 깊이가 변한다!!! 처음에는 1.2m였는데, 인근 Primary School에서 견학 나와서 창체시간 수영수업하는 시간이 되니까 안전요원들이 사람들한테 다 나오라고 했다. 그리고 버튼을 누르니까 사이렌 소리가 나면서 바닥이 올라갔고 수심이 0.9m가 되었다. 0.9m는 조금 얕아서 이 시간대를 피하는 것이 좋다.
- Leeds Bike Hub: 리즈대 내에 위치해 있는 Leeds Bike Hub에 가면 보증금 100파운드와 함께 3개월 22파운드 또는 1개월 10파운드의 아주 싼 가격으로 자전거와 부속품을 대여(hire)할 수 있다. 전기자전거는 대기명단이 항상 쌓여있는 듯했고, 나는 일반 자전거를 3개월간 대여했다.
이메일로 예약을 하고 헙에 방문했다. 스태프가 내 키를 참고해서 창고에서 자전거를 꺼내 왔는데 자전거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은 따로 없다. 이것저것 정비 좀 하더니 나가서 한 바퀴 타 보고 오라고 해서 타고 왔다. 나는 자전거 탈 때 다리가 펴지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안장 3cm만 높여달라고 했고, 마지막으로 타이어에 펌프질도 해줬다. 프런트라이트랑 백라이트, D-Lock이라고 불리는 튼튼한 자물쇠도 기본으로 제공된다.
기숙사와 학교 간 거리가 매우 가까워 자전거를 타고 통학할 일까지는 없었다. 그리고 리즈는 생각보다 경사 진 도시이기도 하다. 다만 기차역이나 교회에 갈 때는 30분 걸어다니던 거리를 10분만에 자전거 타고 갈 수 있어서 유용하게 써먹었다. 내 기숙사인 Montague Burton은 관리실에서 자전거를 등록하면 1인 1자전거 보관 레인을 사용할 수 있었다.
8. 여행
여행을 많이 다닌 편이다. 23개국의 47도시를 다녀왔고 비행기는 총 21번 탔다.
암스테르담, 런던, 요크, 스카버러, 리버풀, 트롬쇠, 더블린, 길포드, 모로코(마라케시 사막 투어 일정), 포르투, 리스본, 세비야, 말라가, 그라나다, 바르셀로나, 베르겐, 에울란, 오슬로, 예테보리, 코펜하겐, 베를린, 에딘버러, 브뤼셀, 윈더미어 호수지방, 옥스포드, 니스, 생폴드방스, 모나코, 파리, 베로나, 볼차노, 도비아코, 베니스, 로마, 바티칸 왕국, 리예카, 자그레브,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부다페스트, 브라티슬라바, 빈, 잘츠부르크, 베르히테스가덴, 프라하, 스톡홀름, 헬싱키, 탈린, 브라이튼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3월 말부터 4월 말까지 학교에서 Easter Break가 한 달 정도 있었는데다가, 5월 중순에 종강을 하고 7월 말까지 여행을 했기 때문이다. 1월 21일에 귀국일을 정해두지 않은 채 출국하였고 귀국은 7월 31일에 했다. 유럽 무비자인 입장이라 쉥겐조약 90일을 거의 다 채우고 나왔다.
특기할 만한 점이라면 5월 중순에 가족 모두가 영국에 왔다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에 우리 가족은 영국 옥스포드에서 1년간 거주한 경험이 있었는데, 그때의 추억을 좇아 다같이 영국에 모인 것이었다. 옛날에 살던 동네에 있는 에어비앤비를 빌려 네 식구가 2주 동안 옥스포드에 거주했고, 마지막 일주일은 프랑스 여행을 했다. 오빠와 아버지는 한국으로 돌아간 후 나는 어머니랑 3주간 이탈리아 여행을 했다. 가족과 함께 지낸 6주는 내가 비용을 전혀 내지 않았기 때문에, 여행을 많이 다닌 것치고는 비용을 많이 아낄 수 있었다.
친구 또는 가족과 다닐 때도 있었지만 혼자 다닌 것이 절반 정도는 되었다. 물가가 저렴한 국가에서는 에어비앤비, 비싼 나라에서는 도미토리형 호스텔을 이용하여 숙박비는 1박 평균 5만원 내외로 끊을 수 있었다. 외식메뉴에 딱히 관심이 없어 에어비앤비나 호스텔에서 요리를 자주 해 먹은 덕에 식비도 많이 아꼈다. 이동편은 비행기, 기차, 그리고 버스를 골고루 이용했다. 다만 기차보다 고속버스가 편리할 때가 꽤 있다고 느꼈는데, 그 이유는 버스에서는 수하물 도난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밤샘 Flixbus를 타고 숙박비와 교통비를 모두 아낀 적도 몇 번 있었지만, 체력에 지장이 있어 자주 이용하진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숙박비와 외식비를 의도적으로 많이 아끼고, 이동편에서는 적당히 아꼈다. 대신 뮤지컬이나 오케스트라 등의 공연 관람료, 그리고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의 입장료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클래식을 연주하고 듣기 좋아하는 나의 여행은 주로 오케스트라 공연을 찾아다니는 것이 큰 줄기였고, 오케스트라 공연과 오페라에만 300만원은 쓴 것 같다. (영국 뮤지컬을 제외한 비용이다.)
항공권은 Skyscanner로 알아보았고 Airhint로 가격 전망을 파악했다. 호스텔은 Agoda에서 알아보았고, 독방을 쓰고 싶을 땐 Airbnb를 이용했다. 기차와 버스는 Omio에서 찾았지만, 중개수수료를 내지 않기 위해서 Omio에서 구매는 하지 않고 해당 버스/기차 사이트에 직접 들어가 구매했다. 다만 영국에서는 Omio 대신 Trainline, LNER, National Express 앱 등을 사용했다.
9.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는 소감
원래 단단했던 나는 오히려 말랑해져서 돌아왔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고, 당연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누군가가 교환 가서 뭐 했냐고 물어보면, 나는 생각 좀 실컷 하고 돌아왔다고 답하곤 한다.
크게 고생하지 않았다. 옥스포드 어느 병설유치원의 유일한 동양인 학생이었던 내게 이 나라는 이미 친근한데다가, 그때 익힌 영국식 영어는 내 영어의 모체라 내게 마침내 안도감을 주는 무언가였다. 영어로 행정처리 및 수업 수강을 하는 것에 크게 문제없는 영어 실력이었으며, 중간에 가족들도 왔기 때문에 보고 싶을 틈도 없었고, 한국에 있는 낮밤바뀐 대학생 친구들이랑 연락이 충분히 잘 되었다. 매일매일 연락하는 외국인 친구는 딱 한 명 남았고, 현지에서 한국인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지도 않았다. 평소에는 방에서 혼자 요리를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서양배와 차 한 잔을 마시며 석양이 23시에 지는 것을 구경했다. 여행을 할 때는 캐리어 대신 15kg짜리 백팩을 짊어졌다. 여권이나 휴대폰을 잃어버리거나, 크게 아프거나, 비행기를 놓치는 사고를 겪지도 않았다. 이렇게 여유로웠는데 학업에 대한 부담도 적었으니, 도피가 목적이었다면 훌륭하게 도피한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향후 10년간은 못 놀아도 안 억울하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 보고서를 쓰고 나면 여정의 끝을 인정하는 게 될 것 같아서 최대한 미루었다. 보통 어떤 형식으로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겪은 6개월은 그 누구도 아닌 나만 간직하고 싶어 그 경험을 전달하는 것보다는 교환학생에 관심이 있는 학우들에게, 또는 다음 학기에 리즈로 갈 학우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 위주로 적어 보았다. 당신도 리즈시절을 즐기고 오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