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교환 프로그램 참가 동기
익숙했던 이십여 년간의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 교환학생에 지원했습니다. 인류학이 다양함과 새로움에 열려 있는 학문이고 인류학을 공부하는 저 또한 이를 지향한다고 생각해왔지만, 막상 그러한 다양함과 새로움을 경험해보았는지 자문해보았을 때 도출한 답은 “그렇지 않다”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철저히 낯선 곳에서 온전히 나의 힘으로 생활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배우고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고 싶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독일 학자들의 철학과 사회과학 이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들이 살았던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깊이 생활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독일에서의 교환학기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II. 파견대학 및 지역 소개
훔볼트 대학교는 베버, 마르크스, 짐멜 등 유명 학자들이 수학했던 유서 깊은 학교이고, 베를린에 위치하고 있어 도시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베를린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로 역사적 장소와 현대적 문화시설을 모두 즐길 수 있습니다. 교통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으며 각종 상점, 마트도 많아 생활하면서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은 불편함 없이 구매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녹지가 많고 인구밀도가 높지 않은 편이라 진정한 도심 속의 여유를 즐길 수 있습니다. 민족도 매우 다양하고 전반적으로 개방성,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분위기라 외국인의 신분에도 포용받는 기분을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III. 출국 전 준비 사항
1. 비자
출국 전 가장 큰 일은 비자를 받는 것입니다. 독일 대사관 홈페이지에서 오전 7시~8시(써머타임에 따라 시간 변동)에 예약을 신청할 수 있으나, 접속 자체부터 매우 어렵습니다. 저는 예약에 실패하여 결국 독일 출국 후 90일 이내에 현지에서 비자(정확히는 residence permit)를 받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직접 외국인청 홈페이지에 접속해 신청을 하실 수도 있겠으나, 마찬가지로 방문 예약 날짜를 잡는 것이 매우 어렵기에 저는 훔볼트대학의 비자 서비스를 이용했습니다. 비자 신청에 필요한 서류들을 학교 측에 제출하면, 서류를 외국인청에 전달해주고 방문 날짜를 잡아주는 식입니다. 물론 이것도 처리가 빠른 것은 아니며, 무비자 입국 기간이 끝나기 열흘 전에 비자를 받을 수 있었지만, 일단 학교에서 비자 발급 중간 과정을 처리해준다는 점에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비자는 한국에서 받고 오는 것이 가장 마음 편하긴 하나, 실패해도 학교 측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으셔도 됩니다.
2. 기숙사
기숙사는 파견 대학 지원 과정에서 신청할 수 있는데, 두 군데를 지원할 수 있습니다. 저는 베를린 동쪽 Lichtenberg 지역의 기숙사에서 생활했으며, 월 327유로였습니다. 기숙사에 붙었다는 연락이 오면, 보증금을 송금하고, 입국 전 기숙사 홈페이지에 도착 날짜를 미리 알려주면 됩니다. 기숙사 앞에 트램 정류장이 있고, 근처에 공원과 마트 등이 있어 생활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다만 선발 방식이 추첨제라, 기숙사 지원 과정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듯합니다.
3. 교통 및 기타
훔볼트대학에서는 등록금은 따로 없고 매 학기 semester fee를 납부하며, 금액은 240.99유로였습니다. 독일 전역 대중교통 이용권인 semester ticket 가격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어 IC, ICE 열차를 제외한 모든 대중교통을 별도의 교통권 구매 없이 이용 가능합니다. 입학허가서를 보내주며 학교등록서류, 독일 보험 가입 확인서, semester fee 납부 확인서를 요구하니 이때 비용을 납부하시면 됩니다.
참고로, 입국 전 독일로 송금할 때에는 '모인(moin)'을 활용했습니다. 한국 원화로 돈을 부치면 유로로 환전하여 송금해주는 사이트입니다. 학생 인증을 하면 송금 수수료가 무료이고, 송금 속도도 매우 빠른 편이라 필요할 때마다 바로바로 납부할 수 있었습니다.
IV. 학업
1. 수강신청 방법
수강신청은 AGNES라는 사이트에서 신청할 수 있습니다. 원하는 수업을 시간표에 담아놓고 기다리면 승인여부가 결정되는 식입니다. 그러나 시스템이 그닥 친절하지 않아 담은 수업이 종종 거절되곤 합니다. 그러나 교수님께 메일을 보내거나 첫 주 수업에 교수님께 찾아가 상황을 설명드리면 대개 받아주시니, 이런 방식으로 수강을 확정하시면 됩니다.
2. 외국어 습득
저는 개강 전 훔볼트 어학센터에서 진행하는 German Intensive Language Course를 수강했습니다. 본교 지원 단계에서 같이 신청할 수 있으며, 레벨 테스트로 반을 배정받아 3월 한달 간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수업을 듣게 됩니다. 수업은 전부 독일어로 진행되는데, 처음에는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덕분에 독일어 실력이 단기간에 늘었고, 외국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빨리 줄어들었으며 다른 나라에서 온 다양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한달간 거의 매일 수업에 참여하면 여행이나 다른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으므로 각자의 교환기간을 고려하여 수업을 신청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V. 생활
1. 가져가면 좋은 물품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베를린은 쇼핑 시설이 매우 잘 갖춰져 있어 모든 것을 사오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외식 물가가 비싸고, 아시안 마트의 한식 재료가 한국보다 비싼 편이므로 독일 생활 초기에 먹을 간단한 한식 재료를 가져오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독일의 날씨가 변덕스러워 바람막이나 기타 겉옷 등을 가져오시면 적응에 도움이 될 듯합니다.
2. 은행, 교통, 통신
비자를 받지 않고 입독했기에 계좌 개설 시 약간의 제약이 있었습니다. 입독 직후에는 Monese에서 계좌를 개설했는데, 이후 해킹을 한 번 당했습니다. 독일 은행 중 Commerzbank는 인터넷으로도 계좌 개설을 신청할 수 있어 여기서 계좌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다만 독일 내 송금만 가능하고 계좌유지비가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독일 은행 계좌와 인터넷 은행 계좌를 각각 하나씩 개설해놓고 필요에 따라 쓰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교통은 훔볼트 대학교 측에서 제공해주는 semester ticket을 통해 이용할 수 있습니다. 또 베를린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국내여행을 다니기에도 좋습니다. DB 앱을 설치하여 기차편을 예매하고 기차편 안내를 받을 수 있습니다.
통신의 경우 현지 유심을 구매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여러 통신사 중 저는 Vodafone(보다폰)에서 유심을 구매했는데,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사용에 문제 없으며 데이터 속도도 나쁘지 않습니다. 보다폰 매장에 가서 직원에게 원하는 요금제를 말하면 알아서 개통해주십니다.
Ⅵ.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는 소감
떠나기 전에는 두려움도 많았지만, 교환학생을 다녀온 지금은 베를린에서의 생활이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고, 외국에서 살면서 생기는 여러 변수들을 스스로 해결해나가면서 유연하게 대응하는 마음가짐을 배웠고,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도 커졌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미래에 조급함을 느끼다가도, 베를린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면 잠시나마 위로가 된다는 점에서, 든든한 마음속 피난처를 얻은 기분입니다. 외국의 한 지역에서 반-현지인으로 살아보는 경험을 해볼 수 있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