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교환 프로그램 참가 동기
쉼 없이 대내외활동과 여러 모임들로 가득 채웠던 4학기의 대학 생활이 지나자 문득 홀로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어느 순간 일상에 파묻혀 사라져버린 ‘나’를 되찾겠다는 갈망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왠지 모르게 미래에 대한 불안도, 과거에 대한 아쉬움도 모두 떨치고 오늘에 충실한 여행자가 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선택하게 된 것이 6개월 간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나를 찾아, 내가 좋아하던 것을 찾아 유럽 대륙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II. 파견대학 및 지역 소개
1. 왜 네덜란드였는가
파견 국가를 네덜란드로 선택하게 된 것에서는 여러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번째로 고려했던 것은 의사소통의 문제였습니다. 비영어권 국가 중에서 영어 능력 지수가 최상위 수준(2023 EF English Proficiency에서 71.45%의 네덜란드 국민이 능숙하게 영어를 구사한다고 보고됨.)을 차지할 정도로, 별도의 제3국어를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생활할 정도로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는 영어밖에 없었기에 이는 큰 고려 사항이었습니다.
두번째는 네덜란드라는 나라가 가진 매력 때문이었습니다. 서울에서도 따릉이를 즐겨 타는 취미가 있었기에, 자전거의 천국이라 불리는 네덜란드에서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다니는 게 기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인구와 영토의 측면에서 작은 나라이지만, 세계해상무역을 이끌며 황금시대를 열었고 세계 최초로 주식회사를 설립하기도 하였으며 오늘날에도 금융과 반도체 분야에서 유력한 기업들을 가진 강한 나라라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저의 관심 분야인 국제법 때문이었습니다. 네덜란드 헤이그는 국제사법재판소(ICJ),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및 국제사법재판소(ICC)가 위치하여 국제법의 수도로 불립니다. 국제재판소를 가까이서 견학할 수도 있고 주변 대학에서도 국제법 관련 커리큘럼이 발달했기에 관련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가 유럽 내에서도 1인당 GDP가 높은 선진국이며 치안도 안정되어 있다는 소식 역시 네덜란드로 파견국을 정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2. EUC만의 특징
네덜란드의 여러 대학들 중에서도 Erasmus University Rotterdam을 고르게 된 이유는 단순합니다. 교환학생 기간 동안 쉽게 여행을 다니기 위해서는 대도시가 편리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인구 기준으로 큰 도시들인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혹은 덴하그(헤이그)에 있는 대학을 선택하고자 하였습니다. 해당 도시 내 파견 가능 대학 중에서 QS 순위(158위, 네덜란드 내 법학부문 5위)가 높은 대학이 Erasmus University Rotterdam이었기에 해당 대학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법학 분야에 관심있는 분의 경우 Leiden 대학도 추천 드립니다!)
Erasmus University Rotterdam은 안에 여러 단과대가 있는데요(ESSB, ESHCC, EUC 등), 아마 수업 방식, 특화된 분야에 있어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가 다녔던 Erasmus University College는 각 유럽에서 온 교환학생 및 유학생이 많다는 것과 수업이 PBL(Problem Based Learning)이라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타 단과대에 비해 발표 및 토론 과제가 많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에 따라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친구들을 학교에서 사귈 수 있고 새로운 형태의 수업 방식을 체험해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강의식 수업에 비해 출결에 대한 기준이 더욱 엄격하고 프로젝트형 수업이 강의 수업보다는 높은 수준의 영어 활용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단점도 뚜렷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선호하는 수업 방식과 관심 분야에 따라 학교 및 단과대를 선택하면 될 것 같습니다.
III. 출국 전 준비 사항
1. IND에서의 거주 허가증 받기
서울대학교와 EUR로부터 각각 파견허가를 받은 이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IND로부터 거주 허가증 신청을 하는 것입니다. IND는 The Immigration and Naturalization Service의 약자로, 네덜란드의 이민청으로 이주외국인/학생 등의 거주 허가와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입니다. EUR 측에서 메일로 안내를 받은 사이트(myEUR)를 통해 거주허가증을 받기 위해 필요한 각종 서류들을 제출하면 됩니다. 서류를 잘못 제출하게 되면 추가적으로 소요되는 시간이 많이 길어지게 됨으로 주의사항에 따름으로써 불필요한 지연이 없기를 바랍니다.
2. PC방 가서 5분동안 당황했던 기숙사 지원썰..!
두번째로 귀국 전 준비해야 할 것은 기숙사 신청입니다. 특이한 점은 신청 과정이 선착순이라는 점입니다. 학교에서 직접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SSH라는 업체를 대행하여 기숙사를 신청하게 됩니다. 건물 종류는 EUR 캠퍼스 안에 있는 신형 건물 Hatta, 캠퍼스 내 구형 건물 F Building, EUC와 가까운 d’Blaauwe Molen 등이 있습니다. (EUC 건물은 EUR 캠퍼스 밖에 있어 걸어서 40분 정도가 소요되니 주의하세요!) 지정 시간에 기숙사 건물과 층, 방 호수까지 선착순으로 신청하는 구조라서 정시에 기다리다가 원하는 방을 선택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네덜란드에서 별도로 집을 구하는 것이 어렵고 돈도 많이 소요되는 만큼 기숙사를 잘 구하는 건 슬기로운 네덜란드 생활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수강신청을 하던 것처럼 PC방에서 기숙사 신청을 하고자 하였는데, 지정 시간보다 사이트가 늦게 열려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계속된 새로 고침 끝에 사이트가 열리자마자 성공적으로 원하던 방에 거주하게 되었답니다~! (저는 Hatta에서 2인 2실에 거주하였는데요. 개인 주방이 있어서 요리하기에 굉장히 편리했답니다.) 서울대학교 수강신청을 하듯 기숙사 신청을 하신다면 원하시는 방 어렵지 않게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3. 짐 쌀 때의 꿀팁
#1 짐은 줄이고 줄여서 최소한으로!
저는 학기 시작 전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했기에 여러 캐리어를 가져갈 수 있었는데요, 각종 식기와 옷, 한국 라면과 김치 등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왔답니다. 하지만 들고 온 짐을 다시 귀국할 때 가져올 수 없어서 상당히 많은 물건들을 버리거나 나누고 와야 아쉬움이 들기도 했답니다. 파견 기간이 끝나고 다시 돌아올 때는 기념품이나 새로 구입한 물건들을 가져올 때 꽤나 부피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에 버릴 물건이 아닌 경우 짐을 최소한으로 가져가는 것이 좋습니다. 네덜란드에서도 밥솥이나 각종 그릇과 식기류, 의류를 구매할 수 있고(HEMA, Action 등 매장), 심지어 각종 한국 음식(쌈장, 굴소스, 고추장, 된장, 라면 등) 역시 아시안 마트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한국에 비해 비싸게 팔긴 합니다만) 따라서 현지에서 구매할 수 없는 것들 위주로 짐을 최소로 챙기는 것이 좋습니다.
#2 여행 중 다양한 날씨를 대비하여 기능성 의류들 챙기기!
여행을 많이 다니시는 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조언인데요, 여러 날씨에 대비하여 기능성 의류들을 챙기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 1월부터 7월까지 여행했던 만큼 계절에 따른 온도 차이 경험하게 되고, 노르웨이 트롬소에서부터 그리스 아테네까지 도시별로 날씨도 정말 다르기에 여러 의상을 챙겨 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겨울철에 입을 내의와 외투부터 여름철에 입을 반팔과 반바지까지 챙기기를 추천합니다. 특히 날씨가 변덕스러운 서북부 유럽에 거주하시는 분들께는 꼭 방수 기능이 있는 의류(고어텍스 등)를 지참하실 것을 제안합니다. 종종 틀리는 강수예보와 거센 바람으로 우산을 사용하기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IV. 학업
1. 수강신청
EUC에서는 1년이 2개의 학기로 나뉘며, 각 학기 역시 2개의 Quad로 나뉩니다. 따라서 한 해가 4개의 Quad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로 파견 가기 전에 2개의 Quad에 대한 수강신청을 미리 진행합니다. 물론 Quad가 시작하고 나서 일주일 간 수업을 변경하거나 취소할 수 있기에 너무 큰 부담을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행스럽게도 EUC의 수강신청은 선착순이 아닙니다. 고지 받은 기간 내에 수강신청 사이트를 통해서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하면 됩니다. 이때 심화 과목의 경우 특정 과목의 선이수를 요구하기에 관련된 안내 사항을 잘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난이도와 학점(ECTS)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Quad가 시작하기 이전에는 미리 어느 요일에 수업이 진행되는지를 알 수 없기에 일주일 일정을 미리 확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학기 도중에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은 이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2. 수강과목 설명 및 추천 강의
EUC 수업의 차별점은 PBL(Problem Based Learning)이라고 하는 수업 방식을 지향한다는 것입니다. 시험과 강의 위주의 수업보다는 프로젝트형 수업으로 각종 발표, 토론, 토의를 수업 도중 진행하게 됩니다. 언어적인 장벽과 새로운 수업 방식에 대한 낯섦으로 수업들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새로운 경험과 깊이 남는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EUC에 오시는 분들께 두 강의를 추천 드립니다.
#1. Foundation of Political Economy (Brandon Sommer)
가장 힘든 수업 중 하나였지만 가장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던 수업입니다. 우선 매주 팀원들과 함께 발표를 진행하며(총 6번을 진행합니다), 마지막 주에는 발표했던 내용들을 종합하여 장편의 보고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비록 때로 불성실한 팀원들과 영어로 발표한다는 어려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정치경제학에 대해 직접 장기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여러 배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영어로 매주 발표하는 경험이나 한 나라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분석하는 경험을 얻고 싶은 분들께 추천하는 강의입니다.
#2. International Criminal Law (Magali Bobbio)
제일 열심히 공부하고 흥미를 느꼈던 수업입니다. 이 강의의 특별한 점은 실제 ICC에서 근무하시는 직원분께서 강의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강사님께서는 아르헨티나 법관 출신으로 ICC의 연구 직원으로 계셔서 관련된 실무 얘기들을 풍부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ICC의 조직과 심리 과정, 관련된 판례도 공부할 수 있기에 국제법에 관심 있는 분께 꼭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 과제로는 강사님과 다른 ICC 직원분께서 재판부를 맡는 모의재판을 진행하는데요, 저는 준비하는 과정이나 모의재판에 참여하는 게 굉장히 긴장도 되고 재미도 있었답니다. 수업을 듣고 ICC에 직접 방문하여 재판 방청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3. 버티는 자가 진정한 승자다!
사실 저는 해외수학 경험이 없었기에 영어로 수업을 듣고 각종 발표와 토론을 하는 게 결코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특히 아는 친구 없이 독강인 수업일 경우, 느끼는 긴장이나 영어 발표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크기도 했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 대형 강의 수업에 익숙했기에 EUC의 수업 방식이 더 낯설게 느껴진 측면도 있는 듯합니다. 그래도 수업에서 참여하며 실수도 해보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는 것 역시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발표를 처음 할 때는 떨렸지만 계속 해보면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고, 수업에서 옆에 앉은 친구에게 말도 걸고 스몰 토크부터 시작하며 친구가 되기도 했답니다. 처음에는 수업을 듣고 소화해내는 것도 어려웠지만, 계속 적극적으로 참여하자 교수님과 친구들의 인정을 얻기도 했습니다. 실수와 어리숙함을 두려워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가장 낯설고 많은 실수를 거듭할수록 제일 크게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이니까요. 건승을 기원합니다.
V. 생활
1. 풍요로운 네덜란드 생활 꿀팁!
#1 NS 구독 신청하기
네덜란드에서는 metro, tram, ferry, train 등의 교통 시설을 이용할 때 모두 OV-chipcard라는 교통카드를 이용하게 됩니다. 물론 다른 신용카드/체크카드로도 결제가 가능하지만, Personal OV-chipcard를 이용하게 되면 구독제를 통해 훨씬 저렴하게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달마다 선택하는 구독의 종류에 따라 할인 받을 수 있는 금액도 차이가 나니, 교통수단을 많이 이용하실 분은 가격비교를 해보셔서 본인에게 맞는 구독제를 선택하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저의 경우 매달 5.6유로를 내고 40%의 요금 할인(출퇴근 시간 제외)을 받았습니다.
#2 Albert Heijn & Jumbo 멤버십 신청하기
외식 물가가 비싼 네덜란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요리해먹는 게 필수적인데요, 이로 인해 자주 장을 보게 된답니다. 대표적인 네덜란드의 마트로는 Albert Heijn과 Jumbo가 있습니다. 이때 두 마트의 멤버십을 신청하게 되면(신청 비용은 무료입니다!) 각 마트의 할인 상품이 있을 때 저렴하게 장을 볼 수 있답니다. 저 역시 Albert Heijn에서 할인하는 폭립이나 Jumbo에서 목살과 닭다리살 고기를 멤버십 카드로 알뜰하게 구매하곤 했답니다!
#3 (선택) 자전거로 네덜란드를 풍성하게 즐기기
저가 네덜란드에서 가장 좋아하던 것은 바로 자전거를 타고 근교 도시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네덜란드는 Leiden, Dordrecht, Haarlem, Delft와 같은 매력적인 소도시들이 많답니다. 그리고 소도시들로 가는 길들도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다니기 편하답니다. 일상이 지치고 심심할 때마다 자전거를 타고 소도시들을 다닐 때면 드넓게 펼쳐진 지평선, 울창한 침엽수림, 잔잔한 운하나 호수 위의 거위와 오리들이 정말 아름답게 느껴졌답니다. 자전거로 네덜란드를 누빌 때 tram이나 train으로는 즐길 수 없는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도시에서 장을 보거나 등하교를 할 때도 자전거를 이용하면 교통비를 아낄 수 있답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고 해서 생활에 엄청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라 선택적인 팁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 Dutch들의 속 깊은 따뜻함(?)에 대해서
네덜란드라는 나라에 대한 첫인상은 사람들이 차갑다는 것이었습니다. 거주 전 행정절차를 밟기 위해 방문했던 헤이그의 이민청이나 로테르담 시청 직원들이나 음식점 점원들이 칼 같고 정이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 수업 때 함께 팀워크를 한 네덜란드 친구들도 친절하긴 했지만 깊은 관계를 맺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유럽 국가 여행할 때 느꼈던 환대나 따뜻함을 받을수록 네덜란드가 더 융통성이 없고 정이 없는 사회라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괜히 Dutch Pay라는 말이 나온 게 아니라는 게 실감이 났지요..ㅎㅎ) 그러나 6개월 거주를 마치고 든 생각은 네덜란드 사람은 정확하면서도 속 깊은 따뜻함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교통이슈로 공항에 늦게 도착하였을 때 곁에 있던 네덜란드 사람들이 먼저 보안검색을 받으라고 도와주었으며, 귀국 편 비행기에서 수하물이 초과되었을 때 딱 잘라 말하면서도 마지막에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수하물을 부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비록 친절하거나 이유 없는 선행을 베풀지는 않음에도 정확한 규칙 내에서 가능한 도움을 주는 것이 지속가능한 잔잔한 Dutch들만의 따뜻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외부로 에너지를 쏟는 대신 가족과 아끼는 친구들에게 집중하는 그들의 생활 방식이 멋있기도 합니다. 네덜란드에 가게 되시는 분들은 그들의 차가움에 당황하지 마시고 속 깊은 따뜻함을 발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스물 한 살, 20개국에서의 이야기들
제 교환학생의 가장 큰 이유는 여행이었습니다. 파견 기간 여러 국가들을 쉴 새 없이 여행을 다니며 정말 다양한 경험들을 쌓았습니다. 유럽 17개국(네덜란드, 영국, 노르웨이, 벨기에, 프랑스, 독일, 덴마크,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폴란드, 체코, 헝가리, 크로아티아, 그리스) 및 아프리카 2개국(모로코, 탄자니아)과 터키를 여행하였습니다.
여행의 이유는 매번 달랐습니다. 이는 저가 경험주의자(?)인 만큼 관심 있던 지리/역사/문화/음식을 직접 오감으로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교환학생 전부터 만든 버킷리스트를 가지고 사전에 계획하며 동행을 구해 여행을 떠나기도, 때로는 어떤 건축물이나 특정 그림을 보기 위해서 즉흥적으로 여행을 계획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기회비용을 감수하고 온 교환학생이기에 ‘뽕을 뽑아야지’라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네덜란드에서 느꼈던 고독이나 권태에서 탈피하기에 여행을 떠났던 순간들도 존재하기도 합니다. 매순간 다른 목표와 마음가짐을 가지고 때로는 혼자서, 때론 아끼는 사람들과, 때론 새로운 동행을 구해서 여행을 함께 하였습니다.
지금 다시 저가 다녔던 여행을 회고해볼 때면, 여행의 자산은 크게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번째는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들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네덜란드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며 느끼던 평화로운 시골 정취, 노르웨이 트롬소에서 기다림 끝에 펼쳐지던 오로라의 감동, 독일 브란덴부르크 광장에서 유로 경기를 유럽인들과 함께 볼 때의 열기, 로마에서 만월 아래 동행들과 버스킹 음악을 들으며 유적들 사이를 걷던 밤 공기, 자정에 센느강 강변에서 앉아 낭만을 즐기고 있는 파리의 연인들을 바라볼 때 느꼈던 부러움, 모로코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사막의 낮과 별들로 가득 찬 밤, 폴란드 아우슈비츠에서 나치의 숨 막히는 집단 학살 현장을 바라볼 때의 충격,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서 산책할 때의 여유와 두브로브니크 로크룸 섬에서 맑고 시원하던 아드리아해에서의 스노클링 할 때 느꼈던 상쾌함, 터키 이스탄불의 블루모스크 전경의 루프탑 맛집에서 즐겼던 터키의 맛. 회고해서 웃을 수 있는 감동의 순간이 많아진다는 것, 그것이 여행을 다니는 것의 가장 큰 특권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두번째는 스스로 도전을 하면서 얻는 내적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외에서 홀로 사는 것은 고국에서 누리는 편안함과 익숙함과 결별하는 경험이기도 합니다. 언어적 장벽에 부딪힐 때도 있고 의지할 사람 없이 고독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여행 일정을 무리하게 잡아서 비행기나 버스를 놓치는 경험도 해봤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가 생긴 발의 물집과 다리의 근육통, 킬리만자로 정상을 오르기 직전 겪었던 고산병 증세는 꽤나 고통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행이란 온갖 변수와 시행착오들 속에서도 버텨내는 힘을 길러준다고 생각합니다. 가졌던 고독의 시간은 한국에서의 인연들에 대한 감사를 느끼며 바쁘던 일상으로부터의 쉼을 누리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비행기를 놓치고 버스를 놓쳤을 때 발상을 전환하여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대안을 찾는 게 제 삶의 더 큰 변수와 시행착오를 만났을 때 대처할 연습을 한 것 같습니다. 온갖 도전들 속에서 고통이 있기에 그 순간순간에서 감사를 찾게 되었고 정상을 오른 순간이 더욱 값지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여행이란 자초해서 불편함과 낯섦을 마주하는 경험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마지막 여행의 자산은 나와 사회에 대해 마주한 수많은 질문들입니다. 외국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거나 현지인들과 함께 거리를 걸을 때면 나와 비슷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남유럽 국가 거리 곳곳에서 울리는 악기 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들의 삶을 대하는 자세와 여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순례길을 걸으며 만났던 덴마크 친구와 나눈 얘기는 덴마크의 사회주택에 대한 영감을 주었습니다. 바티칸의 성당과 성 비텐베르크 교회, 쉴레이마니예 모스크를 방문했을 때는 종교적 진리는 무엇일지를 사유하였습니다. 스트라스부르크의 유럽의회 본회의장에서는 유럽이 이룩한 평화의 역사와 오늘날 직면한 지정학적 위기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베를린 국회의사당의 원내가 들여다보이는 투명 돔에서는 신뢰받는 독일 정치와 한국의 정치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여행을 할 때 열린 사고와 새로운 시선을 얻게 되고 당연시하던 일상과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해 거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께서도 저마다의 가장 특별하고 풍성한 여행을 하고 오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추가적인 Tip
#1 여행을 계획하실 때 설치하면 도움이 될 앱들
(숙박) Agoda, Hostel World, Booking.com
(교통) Skyscanner, Eurail, 각국 철도청 앱(독일, 체코, 스위스 등), Flixbus, Blablacar 등
(지도) Google Maps, Go City
#2 현지 동행을 구할 때는 Hostel World, 한국인 동행을 구할 때는 네이버 카페 <유랑> 활용하기!
#3 여행 다닐 때는 작은 배낭과 크로스백을 들고 다니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많이 이용하시게 될 EasyJet이나 RyanAir 등의 저가항공사의 경우 기내 수화물 중 일정 부피 이상을 차지할 경우 추가 비용을 받기 때문입니다! 크로스백을 매고 다니시면 소매치기나 분실 역시 방지할 수 있어서 추천 드립니다.
Ⅵ. 인생에서 가장 다채로웠던 6개월을 뒤로 하며
지난 6개월 간의 교환학생은 여태껏 인생에서 가장 알차고 다채로운 기간이었다고 회고합니다. 홀로, 완전히 낯선 곳에서 주체적으로 생활하고 공부하며 여행 다닌 순간들은 앞으로 평생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고독을 느끼면서도 큰 해방감과 자유를 누리며, 실수를 해도 괜찮으면서도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져야 하고, 보고 싶은 풍경과 먹고 싶은 음식을 찾아 떠날 수 있는 그 여행자로서 누리던 경험을 돌이켜보며 그리워할 때도 있을 듯합니다. 울림을 주던 풍경들과 소리들, 함께했던 동행과의 추억들, 낯섦 속에서 일상과 사회에 던지던 질문들을 품고 다시 일상의 여행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아직 유럽에서의 순간들이 잔상으로 남아 마음이 뒤숭숭하기도 합니다. 새롭게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떠나시는 학우분들의 여정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건강하면서도 후회 없는 최고로 다채로울 6개월을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