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파견대학
1. 개요
제가 파견되었던 EUC는 에라스무스 대학의 한 단과대학입니다. 주로 인문/사회/자연과학 분야의 강의/연구가 이루어집니다. (특히 순수 학문이 많이 다뤄집니다.) Kralinse Zoom 역 가까이에 에라스무스 대학의 메인 캠퍼스가 위치해 있고, EUC는 시내 중심부인 Blaak 역 가까이 위치해 있습니다. '에라스무스'라는 이름은 로테르담 출신의 15세기 신학자이자 인문학자인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로부터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경제학, 계량경제학, 경영학 분야에서 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 제가 재학했던 EUC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하나의 건물로만 이루어진 단과대학입니다. 로테르담은 세계 2차대전 때 폭탄을 맞아 지금까지 남아 있는 옛 건물들이 얼마 없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EUC 건물이라고 합니다. 1900년대 초부터 큰 규모의 도서관 역할을 해오던 역사가 깊은 건물입니다. 그런데 새롭게 리모델링되어 그런지 굉장히 모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장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맑은 날에는 건물 안에서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었습니다. (가을-겨울의 네덜란드에서 맑은 하늘을 보기가 어렵지만…….)
2. 수강신청 방법 및 기숙사
교환학생들에게 따로 메일을 통해 신청을 받습니다. 강의계획서를 읽고 원하는 강의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EUC에서는 교환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시설이 따로 없어 Blaak역이나 Kralinse Zoom역 주변의 flat이나 하숙을 구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3. 교환 프로그램 담당자, 담당부서 이름 및 연락처
Exchange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있고, Study Abroad Assistant 및 Counselor들과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교환학생 관련 문의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II. 학업
1. 수강과목 설명 및 추천 강의
Highlights of Sociology (5학점)
사회학을 전반적으로 훑는 강의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회학의 기본 이론들부터 gender segregation, irreligiosity, political indifference 등 세부적인 주제들을 다룹니다.
Personality Psychology (5학점)
심리학적 이론들을 배움과 동시에 여러 심리학적 도구들을 활용하여 직접 client에게 컨설팅을 제공하는 활동을 합니다.
Cities and Urbanisation (5학점)
도시사회학을 바탕으로 도시 공간에서 관찰되는 사회학적 요소들을 탐구합니다. Sidewalks, safety zones, smart cities, immigrants’ residence 등의 주제들에 대해 배우고 필요한 경우 직접 현장 관찰을 하기도 합니다.
2. 외국어 습득 정도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합격하신 분들이라면 수업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EUC의 수업들의 경우 Lecture보다 토론/토의 형식의 Seminar가 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학생들과 여러 주제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영어 speaking 실력을 길러 나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적극적인 자세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때문에 함께 참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3. 학습 방법
시험기간에는 서울대에서 공부하듯이 해야 되지만 (물론 밤을 샐 정도로 힘들지는 않습니다.) 평소에는 PBL이라는 튜토리얼(세미나)과 Lecture에 성실히 참여하고 주어진 과제들을 잘 수행하면 됩니다. 앞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튜토리얼 시간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III. 생활
1. 입국 시 필요한 물품 및 현지 물가 수준
기본적으로 필요한 물품들과 함께 서류들을 잘 가져가야 합니다. 교환학생 승인 서류는 꼭 챙겨두셔야 합니다. 입국 심사할 시 필요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물품들은 웬만하면 현지에서도 구입 가능합니다. 물가가 센 편이라 (식료품은 쌉니다.) 직접 요리하여 식비를 절약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2. 식사 및 편의시설(의료, 은행, 교통, 통신 등)
은행은 ING Bank에서 체크카드와 계좌를 만드는 것을 추천합니다. 지하철은 metro card를 만들어서 충전하여 쓰면 됩니다.
EUC의 경우 빌딩 내 시설은 이용하기에 굉장히 편리합니다. 강의실, 도서관, 회의실, 화장실 등 모든 방들이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컴퓨터나 빔 프로젝트 등도 강의를 듣기에 편안하게 되어 있습니다. Ground floor에는 작은 카페가 있어서 출출할 때 이용하기 좋습니다. 1층에 OSEA라는 곳에서 필요한 전공책을 빌리거나 강의 일정, 출석, 기타 사항 등을 문의할 수 있습니다. Enter card를 가지고 출입해야 하기 때문에 외부인들의 이동이 제한되어 매우 안전합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긴 소파나 의자 위에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고는 하는데, 그 활기가 참 좋습니다. :) 그리고 한국에서는 아직 보기 힘든 'Gender neutral' 화장실이 있어 인상 깊었습니다. (참고로 EUC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영어를 쓰도록 되어 있습니다.)
학교 건물에서 아주 조금만 나가면 바로 아래 사진에 보이는 마켓홀이 있습니다. 식료품과 맛있는 요리들, 디저트 (+생활용품) 등을 팔기 때문에 하교할 때마다 들러 필요한 것들을 사가고는 했습니다.
3. 여가 생활
주로 네덜란드 안의 도시들, 인근 나라들로 여행을 많이 다녔고,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보는 등 여유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4. 기타 보고/추천 사항 (동아리/관광 등의 활동)
교환학생의 특성상 학교 동아리에서 활동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다만 학교에서 교환학생들을 위해 제공하는 프로그램/행사들이 꽤 많습니다. 메인 캠퍼스에서는 국제 학생들을 위한 ESN 행사들(학교 투어, 공연, 클럽 파티, 술 뒤풀이 등)에 참가할 수도 있고, EUC에서 따로 진행하는 introduction week 행사나 교환학생들만을 위한 술자리 모임 등에서 여러 학생들과 친목을 다질 수 있습니다. 특히 메인 캠퍼스/EUC에서 재즈/DJ 공연, 영화 상영, TED 강연, 맥주 축제, 페미니즘 행사, 장기자랑, 와인 시음회 등 정말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제공하기 때문에 일정을 확인하고 친구들과 함께 참석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로테르담은 현대식 쇼핑 스트리트 혹은 현대 건축물들로 유명합니다. Blaak 역 주변에 Beurs 역 - 센트랄 역까지 이어지는 쇼핑 거리가 있고,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에는 마켓홀 앞의 큰 광장에서 장이 열립니다. (유기농 과일들을 한 팩에 1유로 정도면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Blaak 역 바로 앞에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러 많이들 오는 'Cube House'가 있어 한번쯤 구경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 외에도 여러 미술관, 박물관, 동물원 등이 있고 맛있는 식당들(인도네시아/인도 식당), 브런치 가게 등이 많아서 눈과 배가 즐거운 나들이를 할 수 있습니다. 방학 기간을 이용해서(EUC에는 가을방학이 열흘 정도 있습니다.) 암스테르담, 델프트, 헤이그 등 네덜란드의 도시들이나 벨기에/프랑스/독일 등 주변 나라들을 여행하는 것도 정말 좋습니다.
에라스무스 대학의 수업들은 주로 교수님의 강의와 튜토리얼(토론 세미나 or 튜터와 함께 하는 수업)이 함께 이루어집니다. (물론 단과대학의 특성마다 다르긴 합니다.) 그 중에서도 EUC의 인문사회계열 수업들은 PBL(Problem Based Learning)이라는 세미나 형식의 튜토리얼에 필수로 참석해야 합니다. 강의에서는 출석 점수를 매기지 않지만, PBL에 참석하지 않으면 바로 점수에 영향이 갑니다. 저는 이 부분이 굉장히 선진적이라고 느꼈는데, 학생들은 튜터의 지도에 따라(튜터는 사회자의 역할만 수행합니다.) 특정 주제에 대한 문제(problem)들을 직접 찾아내고, 이와 관련된 연구 자료들을 스스로 공부한 뒤 다음 PBL 시간에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며 해답을 찾아 나갑니다. 때문에 PBL에서 무어라도 말하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철저해야 하고 적극적인 태도를 갖춰야 합니다. 내용 자체가 한국 대학의 수업에 비해 그렇게 깊거나 어렵지 않으니 부담 가지지 말고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IV.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는 소감
(개인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첨부합니다.)
<여행, 여유, 행복>
교환 생활을 하며 가장 크게 얻은 세 가지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여행과 여유의 소중함, 그리고 행복을 추구하는 또 다른 방식이라 답할 것이다.
실은 내가 이번 교환 생활을 별다른 경제적 어려움 없이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미래에셋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받지 못하면 장학금을 반환해야 했기 때문에, 학기 공부에 충실하고자 했다. 나름 치열하게 배워나갔고, 참여했고, 많은 인사이트들을 얻었다. 치열했던 한 학기가 끝난 후 12일간의 가을방학 여행을 했고, 학기 중에도 짬을 내어 네덜란드의 여러 도시들과 이웃 나라들을 다녀왔다. 그러다 보니 여행지 한곳 한곳의 모습과 문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 머릿속에 선명한 추억으로 남았다. 일상을 여행처럼 지낼 수는 없겠지만, 나를 한 단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일상 속에서 한 번의 여행이 큰 환기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느꼈다. 쉽게 말해 할 땐 하고 놀 땐 노는 자세의 중요함이랄까. 서울대에서 보내는 4학년의 학교 생활도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매 순간 치열하고 열심일 수는 없다. 뇌와 몸에 규칙적인 휴식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 휴식은 여행이 될 수도 있고, 부족했던 수면을 채우거나 미뤄두었던 책을 단번에 읽어버리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네덜란드에서 주변 친구들을 보면서 여유의 가치를 배웠다. 한국에서도 여유를 찾고자 했고,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일상 속의 여유를 ‘늘리는’ 노력을 하지만, 당시에는 여유가 아닌 단순한 ‘여유로움’을 추구했던 것 같다. 왜 나는 놀 시간이 없지, 하루종일 자고 싶다,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스트레스 받는다,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네덜란드에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바쁜 일상 속의 잠깐의 쉼이었다. 공부를 하다가도 간식 타임은 꼭 가진다. 주말에는 머리를 식히려 본가에 내려간다. 일 생각은 잠시 내려두고, 휴식에 ‘집중’하는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놀면서 그 와중에도 불안해하는, 억지스러운 여유로움이 아니라, 여유 그 자체에 집중하는 진정한 쉼. 그 방법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잠깐의 여유를 즐기며 나 자신을 살피고자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느 길을 걸어왔는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부터 앞으로 어떤 루트를 통해 나의 가치를 실현시키고 싶은지에 대한 현실적인 질문들에 답을 해나갔다. 카페에 앉아 한참 동안 멍을 때리기도 하고, 친구와 브런치를 먹으며 같은 고민을 공유하기도 했다. 여행 중 기차의 창문 밖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기도 했고, 하루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이런 저런 자료들을 검색해보기도 했다. 나의 진로, 나의 직장과 같이 미래의 것들을 앞당겨 생각하는 일을 항상 골치 아프게 생각했었다. 교환 생활의 끝이 보일수록 아직도 정하지 못한 것들에 부담을 느꼈다. 그러나 막상 여유 속에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보니, 나와의 대화를 진지하게 나누는 것은 생각보다 행복한 일이었다. 앞으로의 더 큰 행복에 가까워지는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를 살피면서 내가 그려왔던 길로 잘 나아가고 있는지, 격려와 응원을 해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