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파견대학
1. 개요
교환학생을 다녀온 지 벌써 두어 달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하와이의 여운에 휩싸여 있는 걸 보니 그 곳을 참 많이 사랑했던 것 같다. 바쁘게 살다가도 어디로 가는 지 알 수 없던 때, 큰 준비도 없이 나는 태평양 한 가운데 푸른 섬으로 떨어졌다. 4학년 1학기에 교환학생 신청을 해서 조금 늦은 감도 있었지만 늦든 일찍이든 경험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배워 올 것이 많으리라는 기대가 있었기에 큰 주저 없이 2개 학기 수학을 택했다. 지금도 고학년이라는 이유로 때 늦은(?) 해외수학에 대해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꼭 저버리지 말라고 이야기해 줄 것이다. 하와이는 오감으로 체험할 것이 정말로 많은 곳이다. 당장 호놀룰루 국제 공항을 나오면 온 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공기가 첫 시작의 두렵고도 떨리는 마음을 편안히 해준다. 크고 시원하게 생긴 야자수 나무와 파란 하늘, 신선한 공기, 따뜻한 햇살… 처음 하와이를 만나고 행복한 기분에 꽃내음 마저 나는 듯 했다. 하와이에는 생각보다 많은 대학교들이 있었는데, 그 중 내가 공부한 하와이 대학의 마노아(Manoa) 캠퍼스는 하와이에서 가장 번화하고도 유명한 섬 오아후(Oahu)에 위치해 있다. 오아후 섬은 현대적인 도시문명과 원시적인 자연이 어우러진 호놀룰루 공항이 있는 하와이 주도로 하와이의 정치, 경제의 중심지다. 보통 하와이가 하나의 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하와이는 사실 8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있다. 전 세계 관광객들이 찾는 대표 명소 와이키키는 위에서 말한 오아후 섬에 속해있으며 실제로 하와이 이름을 가진 섬은 빅 아일랜드(Big island)라 하여 따로 있는데, 이 섬은 화산과 열대우림, 그리고 코나 커피 등으로 유명하다.
하와이 대학 마노아 캠퍼스는 하와이에서도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하며 전통적으로 이민자가 많아 동아시아학, 지역학이 강하고 언어학, 인류학 및 지리학 분야에서는 미국에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 하와이가 미국 내에서 갖는 상징성과 본래 독립된 왕국이었으나 미국의 지배를 받으며 하나의 주로 편입되었던 역사에 대한 감수성이 큰 터라 미국학 연구도 활발하다. 무엇보다 이 곳에서 공부하며 느낀 것은 하와이의 문화적 다양성이 갖는 장점이 연구에 큰 자산이 된다는 것이었다. 강의실만 보더라도 하와이에서 자랐지만 학생들의ethnicity가 굉장히 다양하고, 다른 국적을 가진 학생들도 많아 함께 토론하며 서로의 ‘다름’에 대한 이해를 넓혀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사람들에게서 다양성, 다원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성숙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대학의 부속기관으로 있는 East-West Center라는 곳에서는 특히 동서문화의 상호간 이해와 학술 교류를 증진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온 저명한 학자들이 활발히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잠깐 하와이의 인구 구성에 대해 살펴보면, 하와이에는 원주민이 약 10%, 이주민이 90%를 차지할 정도로 이주민 비율이 많으며 국적은 대개 미국, 아시아, 유럽 등이지만 아시아계가 절반을 차지한다. 아시아계에서도 일본인 비율은 미국 본토 이주민 비율에 맞먹을 정도로 월등히 높아, 하와이의 사람들은 비교적 일본 문화에 친숙하고 우호적이다. 기본적으로 하와이는 미국령이므로 그들의 native language는 영어이니 혹여나 영어 사용과 관해 아시아계가 많다고 해서 걱정할 것은 전혀 없다.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이 있으니, 그만큼 영어가 조금 서투른 사람에 대한 관용도도 높다는 사실이다. 영어 사용 환경에 노출된 경험이 부족해 영어로 말하는 것에 자신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하와이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며 필요하면 교정된 표현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영어를 못한다고 무시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처음 말을 꺼내는 것이 어렵더라도 회화를 연습해보고 사람들과 부딪쳐보면서 영어실력을 늘리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하와이만큼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곳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내에서 하와이가 제2 언어습득 등 언어학 분야의 연구가 활발하고 인지도가 높을 수 있는 이유가 이와 관련 있지 않을까 한다.)
하와이 대학은 우리 학교만큼 넓지는 않지만 내부로 시내 버스가 다닐 만큼 작지 않은 크기이다. 캠퍼스는 Dole Street을 중심으로 Upper campus와 Lower campus로 나뉘는데, Upper campus에는 주로 수업을 듣게 될 여러 단과대학의 건물들과 도서관, 학생회관, 편의시설 등이 위치해 있고, Lower campus에는 기숙사, 스포츠 시설, 식당 등이 있다. 건물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강의실 시설은 훌륭하다. 학교는 유명한 와이키키나 큰 쇼핑센터, 다운 타운과도 가깝고 버스 노선도 잘 되어있어 접근성이 좋은 편이나, 버스가 대개 15분에서 길면 30분 간격으로 오기 때문에 ‘TheBus’ (www.the bus.org)에서 시간, 운행 루트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나가야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
하와이는 기본적으로 연중 따뜻하고 온화한 여름 날씨로 캠퍼스 내에 큰 야자수와 꽃나무들이 가득하고 기후 특성상 거대한 식물, 특히 큰 뿌리와 이파리를 드러낸 큰 나무들이 많다. 캠퍼스 자체가 매우 자연친화적이기 때문에 자연과 여름의 녹음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즐거운 환경이라 할 수 있다.
2. 수강신청 방법 및 기숙사
수강신청은 첫 학기에는 정규학생들보다 늦은 날짜에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두 번째 학기에는 정규학생들과 같은 시간에 신청할 수 있었다. 수업을 넣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은데 학생들이 많이 몰리는 과목들은 역시 금방 자리가 없어지므로, 원하는 과목을 넣지 못한 경우에는 담당 교수님께 메일을 보낸 후 첫 수업시간에 출석하여 말씀을 드린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과목들이 특정한 과목(Pre-requisite)들을 선수강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교양 수업이 아니고서는 실제로 수강신청 시스템에 신청할 수 있는 강의 수의 제한이 많다. 이 경우 역시 교수님께 메일을 보내어 자신이 교환학생 신분임을 알리고 사정을 감안해주실 것을 부탁 드린다. 한 가지 서울대 수강 시스템과 다른 점은, 수강신청 기간 동안에는 시간 상관없이 24시간 내내 아무 때나 과목을 넣고 뺄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UH의 기숙사는 크게 아파트형 기숙사와 일반 기숙사가 있는데 방 2개, 거실, 주방, 화장실이 있는 아파트형은 3학년 이상이어야 들어갈 수 있다고 알고 있고, 일반 기숙사는 방에 침대만 있는 형태다. 후자의 경우 Meal plan을 의무적으로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기숙사는 가을학기보다는 봄학기에 들어가기 수월하다고 한다. 이외에도 학교 외부에 YMCA 등의 사설 기숙사들이 많이 있고, 룸메이트를 구해서 원룸이나 studio 등 따로 집을 구하는 경우도 흔하다. 나의 경우 처음 하와이에 도착해서는 싼 민박에 머무르며 신청했던 기숙사가 붙기만을 기다렸는데 결국 떨어져서 다른 집을 알아보게 되었다. 운 좋게도 대학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한 친구의 추천으로 싸고 괜찮은 외부 기숙사를 알게 되어 그 곳에서 지내며 통학했다. (우연히 내가 살았던 기숙사가 있는 Punahou St.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다녔던 미국의 명문 사립학교 Punahou School이 있었고, 믿거나 말거나 정보에 따르면 내 기숙사 바로 옆 건물 아파트에 오바마 대통령의 부모가 살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가끔씩 학교 내부의 기숙사에 놀러 가면, 특히 주말에 밤마다 소란스럽게 방 안에서 파티를 하거나 함께 영화를 보는 등 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노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늘 안정적으로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라 생각되었지만, 매 주말이 이렇다면 쉬고 싶거나 할 때는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어떤 친구들은 자신의 룸메이트들이 여자친구나 남자친구를 데리고 와 방에서 노는 일이 많아 불편해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어느 곳에 살든 장단점이 있으므로 자신의 성향 등을 고려해서 집을 잘 선택해야 한다.
3. 교환 프로그램 담당자, 담당부서 이름 및 연락처
학교의 ISS (International Student Service)라는 부서에서 교환학생에 관련한 모든 일을 담당한다. 학기 시작 전에는 비자나 등록, 수강 신청 등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열고 파티를 통해 교환학생들 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기회를 만들어주며, 학기 시작 후에도 ISS 주관으로 진행되는 다양한 행사가 있다. 하와이 대학으로 교환학생을 오는 학생들은 자동적으로 MIX (Manoa International Exchange) 프로그램에 등록되는데, Darrel Kicker라는 분이 이를 담당하신다. 아주 친절하게 교환학생들을 기억하시며 궁금한 사항이 있거나 문제가 있을 때 도와주려 하시고, ISS와 직접 관련되지 않은 문제라도 다른 문의할 곳을 알려주거나 관련된 분을 연결해주신다.
Darrell Kicker
Coordinator, Mānoa International Exchange
Phone: (808) 956-4728
kicker@hawaii.edu.
II. 학업
1. 수강과목 설명 및 추천 강의
첫 학기에는 America and the World, Intercultural Communication, Cross-Cultural Psychology를 수강했고, 그 다음 학기에는 Asian Studies, History of Peace Movement, Cinema and Digital Media, Conflict Management, 그리고 합창수업인 University Chorus를 들었다.
하와이는 원래 1800년대 중반까지 왕국으로 존재하는 엄연한 독립 국가였지만, 1898년 미국은 스페인과 전쟁하며 괌, 필리핀, 쿠바 등지와 더불어 하와이를 군사적으로 점령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백인 계열 엘리트들을 통해 하와이 내부 사회를 잠식해나갔다. 그 이전부터도 하와이 왕조는 미국과의 무관세 조약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계속해서 압박 당했고, 미-스페인 전쟁 과정에서 진주만에 대한 독점권을 내어주다시피 하며 결국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 후로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하와이에는 미군의 태평양 기지 진주만을 비롯 군부에 의한 대규모 영토 장악이 이루어진다. 내가 들었던 America and the World 수업에서는 발견과 정복, 노예제와 자본주의, 세계 대전과 군사 권력, 사회 운동, 대중문화, 개발과 환경 등 다양한 주제를 아주 빠르게 소화해야 했는데, 가슴 아픈 역사를 통해 미국으로 편입된 하와이가 중간중간 몇 개의 주제들에서 case study로 조명되었다. 이 과목의 교수님이 듣기로 30대 중반의 하와이 대학에서 제일 젊은 교수님이셨는데, 진보적인 성향이 아주 강하시고 provocative하시며 현실 참여 의식이 많으신 분이셨다. 작년 월가 시위가 한참 있을 때 강의도 쉬어가며 본토에 가 시위현장에 참여하고 오실 정도였다. 교수님께서는 문학,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 등 많은 매체들을 가지고 실감나는 미국 역사를 보여주려 하셨다. 또 매시간 어떤 중요한 역사적 질문이나 평가에 대해서 스스로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이론적으로 구성한 ‘나’의 대답을 내어보기를 유도하셨다. 이 과목은 읽을 책과 자료가 매주마다 버거울 정도로 많았고, 주중 매주 한 번 있는 토론 세션에서 매번 읽은 것에 대한 테스트가 이루어져 그것에 대한 압박이 작지 않았는데, 내 주장에서 논리나 근거가 약할 때 참고할 사항들, 또 내가 제시한 예시들에 관련해 에세이나 토론에서 풍부한 피드백을 주실 때마다 감사하고도 나 자신의 부족함을 많이 느끼게 되었다.
Intercultural Communication의 Gary Fontaine 교수님은 개인적으로 첫 학기에 내가 제일 좋아했던 선생님이셨다. 생김새나 말투가 즐겨보는 미국 드라마 The West Wing의 바틀렛 대통령과 비슷하기도 하고, 실제로 유머감각도 많으셨다. 문화 간 커뮤니케이션은 물론 해외에서도 이루어지지만 내가 사는 문화 안에서도 이루어진다. 이 과목에서는 서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 사이에 성공적인 상호작용이 이루어질 수 있기 위해 필요한 내용, 도전 과제들을 이론과 연구 등을 통하여 살펴보았다. Perception, convergence, ecological influence, 그리고 문화적 다양성의 중요한 차원들 등은 Cross-Cultural Psychology라는 심리학과 과목에서 수강한 내용과 겹치는 부분도 많았다. 국제적 비즈니스나 다문화 직장, 외교, 국제 결혼 등 다양한 맥락에서의 문화 간 상호작용을 살피고, 앞으로 어떤 식의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 또 필요한 지 등을 논의하였다. 과제는 주로 나 자신에 대한 분석이 많았다. 해외에서 수학하면서 내가 절절히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기에 더 몰입해서 생각해볼 기회가 많았다. 나의 문화가 나의 형성에 미치는 영향, 사람들의 인식, 태도, 가치, 기대, 행동 등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차이들, 그리고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그들에 관해 관찰하고 어떻게 하면 차이를 극복하고 효과적으로 상호작용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할 수 있었던 수업이다. 무엇보다도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동서양이 함께 노력하고 조화하는 데 있어 집단 지성과 사람들의 결속하는 힘이 점점 중요해진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선생님의 따뜻하게 반짝이는 감수성이 참 좋았던 수업이었다.
Cross-Cultural Psychology는 심리학의 ‘문화적’ 맥락과 접근이 매우 강조되었다. 그 맥락 안에서 서구의 심리학적 방법론이나 발견 내용들이 보편 타당한지, 특히 서구의 문화-철학이나 과학, 학문 분야-가 어떻게 심리학적 지식과 실습 등을 형성해 왔는지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볼 것을 강조한다. 매우 큰 강의실에서 몇 백 명의 학생들이 듣는 대형 강의였음에도 불구하고 Shanna 교수님은 학생들과 소통을 매우 원활히 하셨고 틈틈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받으셨다. 보통 큰 강의에서 수업을 들을 때 한국에선 질문을 자제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곳은 누구나가 거리낌 없어 보였고 강의실 저 끝 쪽에서도 손을 번쩍 들고 참여하려는 학생들이 많았던 것이 나에게도 자극이 되었다. 선생님께서 민속 지학 쪽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았고 수업시간에도 다양한 민족들의 문화와 이론적인 분석을 담은 (조금은 오래된?) 테이프를 많이 보여주셨다. 수업 내용 자체는 쉬웠고 심리학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학생이라면 시험은 수월하게 볼 수 있다. 한 번의 흥미로웠던 Participant Observation 과제는, 나의 문화가 아닌 다른 문화권, 혹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인 집단의 행사나 의례 등을 참여하고 민속 지학 연구에서 하듯 의례나 그들이 공유하는 가치가 그 내부 문화에서 갖는 상징성과 의미를 분석해보는 것이었다.
다음 학기는 그 전 학기보다도 조금 더 활기차고 활동이 많았다. 하와이 대학의 Academy of Creative Media에는 디지털 시네마, 컴퓨터 애니메이션, 게임 디자인 등 여러 미디어에 대한 수업, 워크숍, 프로젝트 과목들이 많은데, 앞으로 진로를 이쪽으로 계획하는 학생들에게는 학교에서 더없이 큰 실무경험을 제공해줄 수 있는 인프라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많이 부러웠다. 내가 들은 Cinema and Digital Media는 영화학 개론 같은 과목으로 내러티브, 스타일, 미장센, 시네마토그라피, 편집, 음향 등 대충 알고는 있지만 자세히 배워본 적 없는 영화의 구성요소 등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었다. 배우는 개념들이 각각 부각되는 영화가 매주 지정되고 그것에 대해 Screening 저널을 쓰면서 영화를 분석적으로 보는 눈을 키울 수 있었고, 영화의 다양한 장르와 역사에 대해서 공부해 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 과목의 꽃은 바로 Project Greenlight이라고 불리는 필름 프로젝트로, 영화의 구상단계에서 프로덕션 이전의 홍보(Pitch)까지 실제로 영화를 제작하기 전까지 이루어지는 전 과정을 진행하고 결과물을 발표하는 것이다. 맨 처음에 스토리보드를 구상하고 Shot list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함께하는 조원들끼리 정말 많이 친해졌고 모이는 그 시간들이 정말 즐거웠다. 우리의 장르는 드라마 비슷한 것이었지만 우리가 만들어 낸 스토리 마지막의 반전을 듣고 ‘와!’ 하는 학생들의 반응과 선생님의 큰 칭찬에 뿌듯했던 순간도 있었다. 조원들은 모두 나보다 어렸지만 그 중에 한 명은 나중에 카메라맨이 되어 영화를 촬영하고 싶어하는 남학생이었는데 그의 열정과 추진력은 정말 본받고 싶었고, 다른 모두에게도 배울 점이 많았다. 영화나 다큐멘터리 제작에 대해 진지한 관심이 있는 친구들에게서 나름의 문제의식이나 세계를 대한 깊은 관심을 느끼며 큰 인상을 받기도 했다.
Asian Studies는 사실 한 분과로서의 이름이기도 한데 이 특정 수업은 동아시아의 중국, 한국,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다루었던 수업이다. 거의 역사 수업이었고 현대로 넘어오면서오늘날 세 나라의 국제사회에서의 쟁점을 짚어보는 정도였다. 하와이에 와서 일본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되면서 일본 역사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중국 역사는 고등학교 때 간단히 배웠던 기억밖에 없어서 특히 중국과 일본 역사를 흥미 있게 들을 수는 있었지만, Eric Harwit 교수님의 나직하고 조용한 목소리에 차마 잠을 청하는 학생들도 많이 보였다. 시험 문제들이 까다롭지는 않지만 중간고사 2번에 기말고사 한 번 총 세 번의 시험을 봐야 하고 그 때마다 방대한 양을 커버하므로 미리미리 공부를 해두어야 했다. 하지만…
History of Peace Movement 과목은 늘 내 마음을 떨리게 했던 과목이다. 대학 수업을 들으면서 이 과목을 맡으셨던 Susan Dixon 교수님처럼 온화하고 따뜻하고 공감력 넘치시는 교수님은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간 단순하게만 생각해 왔던 그 평화란 무엇인지, 과거의 사람들은 이것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노력을 했는지, 평화 운동에 대한 어떤 정의가 있어왔고 왜 지금의 시대에, 이 운동을 하는 것이 전쟁에 참여하는 일보다 어렵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는 수업이었다. 역사 속에서 있어왔던 여러 차원의 평화운동-종교적이거나 비종교적 평화운동, 비폭력 시민 운동, 인권을 위한 캠페인, 테러에 대한 저항 등-에서 각각의 이념이나 목적, 전략, 영향 등이 어떠했는지 살펴보는데 있어 많은 시청각 자료가 동원되었고, 수업 중에 접한 다큐멘터리나 영화, 혹은 노래들은 어떻게 이것을 전에는 접해보지 못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을 강하게 울리는 것들이었다. 교수님은 Geopolitics 분야를 전공하셨고 그에 맞게 지역학의 차원에서 국제 분쟁문제들도 많이 다루어주셨다. 국제적인 갈등문제, 혹은 물리적이거나 구조적인 폭력 문제에 어떻게 하면 더 건설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지, 어떻게 효과적으로 긍정적인 사회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지에 대해서 토론하는 때 사람들 모두 한 마음이 되는 것 같았다. 모두 언급할 수는 없지만 이 수업에서도 다양한 인종과 삶의 배경,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고 각자의 이야기가 서로의 마음을 흔들었다. 교수님은 진정으로 평화를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각자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조그마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기를, 그 힘을 찾아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셨다. 두 번의 외부인사 초청 강의도 있었는데 한 분은 교수님과 함께 “Voices of Conscience”라는 책을 쓰신 Ann Wright로, 전 미국 육군 대령이자 2003년 이라크 침공에 항의하며 공식적으로 미 국무부에 사임을 발표했던 공무원들 중 한 명이었고, 다른 한 분은 하와이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세계 정상들을 위해 마련된 만찬회에서 용감하게 워싱턴DC의 정치가들과 기업, 금융권의 탐욕을 비판하는 노래인 ‘We are the many’라는 노래를 부른 하와이의 가수이자 평화운동가 Makana였다. 그 두 차례의 만남에서 받은 감흥은 말로 할 수가 없다. 그들은 정말로 아름답고 용기 있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Conflict Management는 갈등 커뮤니케이션, 갈등 관리, 해결 등을 커뮤니케이션적 관점에서 강의하는 수업이었다. 여기서 갈등에는 개인간, 집단 내부, 집단간, 기업간, 문화간 그리고 국가간 갈등 등 여러 차원이 있는데 이것저것 조금씩 사례로 다루다 보니 다소 분석의 깊이는 떨어진다. 대체로 교수님의 강의가 주이며 두 차례의 프레젠테이션 과제와 세 차례의 갈등 사례 분석 과제가 있었고 그 외 자잘한 In-class 활동들이 있다. 조별 활동을 많이 시키시기 때문에 수업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친구들을 사귀기 좋았다. 김장현 교수님, 한국 분이셔서 클래스에 달랑 두 명 있는 나와 연대에서 온 오빠를 반가워하시고 밥도 사주셨다. 책이나 강의하시는 내용 자체는 매우 쉬웠고 약간은 심리학과 커뮤니케이션의 이런저런 이론 등을 섞어 둔 느낌도 들었다. 과제를 하면서 성격과 갈등 관리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논문들을 몇 편 흥미롭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으로 University Chorus. 이것은 대학 학생들뿐만 아니라 지역 사람들도 함께 참여해서 발성을 배우고, 함께 노래할 수 있는 수업이다. 이 수업은 화요일 저녁에 한 번 있는 수업이라 더욱 기다려지기도 하고 특히 지도하시는 Miguel Felipe 선생님이 정말 유쾌하고 유머가 탁월하신 분이라 특히 좋아했던 수업이었다. 우리는 각각 다른 대성당에서 두 차례의 공연도 할 수 있었다. 첫 번째 공연은 University of Hawai’i 뿐만 아니라 하와이 내의 다른 6, 7개의 대학들과도 함께 한 공연이어서 다른 학교 학생들과도 즐길 수 있는 자리였고 두 번째 공연은 하와이 대학 안에 있는 세 개의 Choir의 노래들로만 구성되었던 것이었다. 두 번째 공연의 타이틀이었던 ‘Immortal Harmony’라는 표현처럼, 함께 음을 맞추고 조화로운 소리를 낸다는 것은 단순히 노래를 하는 것 이상의 무엇이 있다. 평소에 합창이나 다같이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없이 좋은 추억이었는데 우리가 불렀던 칸타타 ‘In Windsor Forrest’는 셰익스피어 희곡의 구절들이 노래로 옮겨진 것들이라 내게는 더욱 의미 있고 애정도 많이 갔다. 함께 즐거운 노래를 부르면서 느꼈던 가슴 떨리는 기쁨을 아직도 잊을 수 없고, 다시 하와이에 갈 기회가 된다면 제일 먼저 찾아가 문 두드리고 싶은 수업이다.
2. 외국어 습득 정도 및 학습 방법
영어를 좋아하는데 한 번도 영어 문화권에 나가본 경험이 없어서 가기 전에는 걱정이 조금 되었고, 그 동안 우리 학교에서 영어 강의를 들을 때도 말 하고 싶을 때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주저할 때가 많았다. 그 곳에서는 한국 사람들을 만날 때를 제외하고는 늘 영어를 써야 하기에 순간순간의 상황에서 바로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훈련이 계속 되었다. 혼자 있을 때는 바로 머릿속의 생각을 꺼내고 말하는 상황을 상상하면서 어떤 어휘가 부족하고 그 상황에서 다음에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연습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영어를 말할 기회가 많지 않으므로 주저함을 없애는 게 먼저 필요했고, 제일 좋은 것은 현지의 친구들과 많이 어울리면서 함께 놀면서 ‘잘, 문법에 맞게’ 말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떨치는 것이었다. 감사하게도 하와이에서 친절하고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었고 그들과 어울리고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영어로 말하는 데 대한 어려움은 거의 사라졌다. 물론 더 세련된 영어를 구사하거나 전문적인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영어적 사고나 마인드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조금 더 그 문화에 대한 immersion의 경험이 요구되기에 교환학생 경험은 직접적인 영어 실력 향상보다도 장기적 영어 학습에 자산이 되는 것 같다. 아카데믹한 영어는 토론이 많거나 다른 학생들과 상호작용이 많은 수업을 택하고, 읽기와 쓰기에 대한 노력을 병행한다면 노력하는 만큼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영어만을 따로 공부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나 전공 지식, 전문 분야 등을 영어로 학습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한다.
III. 생활